요즘은 협동조합이 대세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작년에 이어 여러 번의 협동조합 강의가 만들어져 진행되고 있다. 나도 지난해와 올해 초에 연이어 몇 번의 협동조합 강의를 함양에서 진행하기도 하였으니 그야말로 협동조합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일인 것 같다. 대안에너지를 고민하는 협동조합. 소비자운동을 하는 협동조합. 생산자의 권익을 보호하려고 움직이는 협동조합 등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있으며 최근에는 음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형태의 협동조합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협동조합에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가 있어 소개하고 싶다. 이 협동조합을 소개하고 싶은 생각에는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움직이고 있는 대부분의 음식문화운동과 음식철학들은 우리 고유의 사회·문화적인 기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펼치고 있는 문화운동으로서의 음식철학들을 큰 고민 없이 우리식으로 진화시킨 것과는 달리.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는 이 땅의 대다수 근로자의 한 끼를 걱정하는 데서 시작된 음식문화운동이기 때문이다.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는 지난 7월에 창립하면서 창립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인간은 행복하여야 한다. 그 행복에 끼니는 필수의 조건이다. 협동조합 끼니는 대한민국의 모든 인간이 음식 앞에서 행복하였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은 경험이 없다. 늘 굶주렸다. 한반도의 땅은 척박하고 겨울이 길며 여름 날씨는 거칠어 넉넉한 끼니를 제공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이 땅에는 유구한 미식의 역사가 있다는 착각이 만연하고 있다. 조선왕국의 극소수 왕족과 양반 계급의 기록에서 미식의 흔적을 찾고 있다. 한반도를 실제로 경영하였던 계급은 생산자 민중이다. 민중에게서 먹을거리를 착취하였던 계급의 특별난 기호가 우리 음식문화에 덧칠되는 것은 이 땅에 살았던 민중에 대한 모독이다. 못 먹고 살았어도 그게 이 땅에 살았던 민중의 일이었으면 우리의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에게 미식의 역사가 없었음을 고백하여야 한다. 불행하였어도. 우리의 역사이다. 2013년 현재 한국인은 넉넉한 끼니를 확보하고 있다. 이 땅의 먹을거리 생산자들이 노력한 결과는 아니다. 밖에서 가져온 먹을거리로 넉넉해진 것이다. 1960년대까지 한국인의 70%가 농민이었으나 2013년 현재 기껏 5% 남짓 하다. 이 땅의 농민은 한순간에 노동자로 바뀌었고. 노동자의 먹을거리는 국외에서 가져오고 있다. 한국인이 소비하고 있는 곡물과 고기. 과일. 채소 등 모든 먹을거리를 열량 기준으로 계산하면 자급률은 40%이다. 앞으로 이 자급률이 높아질 가능성은 없다. 농민은 늙었고. 젊은이는 농촌에서 살려 하지 않는다. 넉넉한 밥상 앞에서도 늘 불안하며 정신적 허기를 호소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배만 불린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위의 내용만 보더라도 농산물의 생산에 수많은 군민들의 끼니가 달려 있는 함양에서 특히 눈여겨 읽어볼만한 선언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넉넉한 밥상 앞에서도 늘 불안하며 정신적 허기를 호소하는 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선언문이며 배만 불린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 나의 후세들을 위해 우리의 밥상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선언문이니 조금 더 읽어보고 싶은 궁금증이 생긴다. 그리고 나는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에서 앞으로 펼치게 될 음식문화운동이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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