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프랑스인 조카사위가 있다. 인물도 좋고. 매너도 좋고. 다른 건 다 좋은데 우리나라 사람과 같이 일을 악착같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인 조카가 나름대로 고생을 한다. 이들의 대화 내용을 보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프랑스인들의 대화를 보면 성생활. 여성의 다양한 속옷 등을 주제로 한 대화를 당연히 여긴다. 그러나 돈을 주제로 삼는 것은 천박하게 여긴다. 누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또 무슨 차량이나 별장을 구입했다는 따위를 묻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미국인들은 식탁에서 섹스를 대화로 삼는 것엔 질겁한다. 돈 얘기는 밤새도록 해도 괜찮다. 프랑스인에게 돈은 자신을 보여주는 증거의 형태가 아니라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그 무엇에 불과할 뿐이다. 일을 더 하면 월급을 더 준다고 해도 휴가를 줄이면서까지 하진 않는다. 인간은 존엄성을 가져야 하는데 돈과 존엄성을 맞바꾸다니…라고 생각한다. 유럽 국가들의 생각은 영국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하다. 무조건 여름휴가는 6주간이다. 어렸을 적 부모에게 물려받은 전통이 그렇기에 6주 휴가가 안 되면 나는 “인간도 아닌 존재”라고 철학적으로 고뇌한다. 미국은 완전히 딴판이다. 미국인에게 돈이란 훌륭함을 나타내는 증거다. 돈은 곧 종교다. 요즘 한국의 어떤 아줌마가 ‘60대 이상에게 가장 중요한 3대 요소를 말하라’는 퀴즈에서 “첫째 머니. 둘째 현찰. 셋째 캐시(cash)”라는 답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부자이기만 하면 장땡인가? 여기 간단한 소재가 하나 있다. 한 순간에 100억원을 갖게 된 로또에 당첨된 A와 전국 퀴즈게임 최종 승자 B와의 차이를 미국인들은 어떻게 설명할까. B는 엄연히 자신의 능력으로 번 사람으로 쳐주고 여기저기 TV에 출연 요청도 받는 출세한 사람으로 쳐준다. 반면 A는 아무런 능력을 증명한 적이 없다. 괜히 공돈만 생겼으니 강도가 들끓지 모르므로 숨어서 살아야 한다. 바로 이 점이다. 미국에서 부는 반드시 자신의 능력과 결부된 그 무엇이어야 한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채점표다. 따라서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주 엄격하게. 미국에서 기업의 목적은 돈만 벌자는 게 아니며 직원들에게 수익성을 역설해선 안 된다. 돈은 증거이며 보상에 꼭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자신의 급여가 올라가는 각도는 성장의 강력한 상징이다. 승진과 더불어 차량이 달라지고 사무실이 달라지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일이다. 유럽인들은 조상대대로 물려온 신분(귀족)의식이 강한 반면. 미국인들은 빈손으로 떠나온 가난뱅이 의식을 떨치지 못한다. 유럽인들은 큰 돈을 벌면 은퇴생활을 즐긴다. 반면 미국인은 ‘할 일 없음 = 존재가치 0’의 등식이 성립한다. 은퇴란 없다. 죽을 때까지 네 존재가치를 증명하라! 그래서 수십억 달러를 번 다음에도 얼마나 유능한지 입증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더 벌려고 아등바등 다툰다. 남에게 기부하는 것은 인생의 승자임을 알리는 금메달이다.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며 그저 능력의 성적표이고 그것을 사회에 되돌리란 DNA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한국인.. 우리는 식탁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가? 돈과 일은 무슨 관계인가? 돈보다 인간의 존엄을 높게 치는 프랑스 방식이 좋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위에서 예를 든 어떤 아줌마의 60대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 크다. 일의 과정과 도덕성 따윈 모르겠다. 무조건 부자가 되고 봐야겠다. 이제 선진한국이란 말을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러자면 부(富)와 일(job)에 대한 한국적 사전적 근거를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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