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고장 함양. 그 속에 숨쉬는 정자문화 글 싣는 순서 1) 함양에서 선비의 길을 걷다. 2) 팔정팔담의 화림동 계곡-거연정·군자정 3) 팔정팔담의 화림동 계곡 &#8211; 동호정·농월정 4) 정자 문화의 진수 전남 담양군 5) 100여개 정자의 향연. 경북 봉화군 6) 정자문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100여개의 정자가 자리 잡은 정자(亭子)의 본향 함양. 국립공원 1호 지리산과 남덕유산을 따라 흘러내린 수많은 계곡에는 아름다운 풍광을 벗 삼은 정자들이 들어섰다. 함양은 선비의 고장이다. 그 대표적인 표현이 `좌안동 우함양`으로 선비 문화의 본산이기도 했다. 그것을 가장 쉽게 엿볼수 있는 것이 정자(亭子). 옛날 선비들이 만남을 갖고. 시를 짓고 풍류를 읊던 곳. 더위를 피해 탁족을 즐기던 곳. 정자에는 선비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나타난다. 현존하는 옛 목조건물 중 가장 많은 것이 정자. 정자는 우리의 선조들이 벼슬길에서 물러난 후 관직에 나가지 않는 처사(處士)로 지내면서 소박한 정자 한 칸을 마련해 저술과 강학 활동을 펼쳤다. 또한 학덕 높은 스승이 거닐던 곳에 제자나 후학들이 그 학덕을 기리는 정자를 건립해 인격과 학문을 수양하는 장소로 삼기도 했다. 정자는 건물 자체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담겨진 선비들의 삶과 정신이 더 중요한 자산이다. 이에 본지는 함양의 정자 문화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경북과 전남지역 정자 문화의 조명을 통해 함양의 정자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6회에 걸쳐 점검하려 한다. 자연을 벗삼아 시문을 읊던 선비들의 길을 걸어보자. <편집자 주> 2) 팔정팔담의 화림동 계곡-거연정·군자정 초여름 무더위가 한껏 달아오른 지난 5월21일. 함양 정자의 본향(本鄕)이라 할 수 있는 화림동계곡을 찾았다. 그 동안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을 몇 번 와 보았지만 경치만 둘러봤지 세세한 부분에 대해 알지 못해 이날 탐방길에는 배정경 문화관광해설사가 함께 했다. 함양읍에서 출발해 안의면을 거쳐 화림동계곡을 올라 선비문화탐방로의 첫 걸음인 거연정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10시께. 화림동 계곡에는 팔정팔담이 있어 모두가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냈다. 평일이라 탐방객들이 있지 않아 호젓한 정자의 정취를 감상할 수 있었다. 자연에 내가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여타 정자들이 대부분 계곡의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거연정은 계곡 중간 바위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거연정에 가기 위해서는 구름다리 화림교(花林橋)를 건너야 한다. 다리 아래 계곡은 제법 수량이 많고 또 깊다. 하지만 상류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물이 탁하여 안타까웠다. 지금은 구름다리가 놓였지만 원래 배를 타고 오가거나 반대쪽 물이 얕은 곳을 골라 바위를 타고 넘어 와야 했다고 한다. 바위 위의 거연정과 계곡. 계곡 위를 가로질러 거연정으로 통하는 화림교가 연출하는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녹이 슨 화림교는 거연정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갓을 쓰고 양복을 입은 것 같다할까. 이른 느낌을 받고 있으니 배정경 해설사가 “이 구름다리는 녹슬고 거연정과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사진을 찍으면 정말 멋지게 나와요. 그래서 다리를 없애기도 뭐하고...”라고 말했다.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추억으로 남는 사진에는 너무나 멋진 느낌이 든다고. 얼마 전까지는 철판을 덧댔다고 하는데 지금은 나무바닥이었다. 그렇게 구름다리를 건너 거연정 속으로 들어갔다. 중수한지 백년을 넘긴 거연정은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자연 바위 위를 훼손하지 않고 나무를 받쳤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통 건축에는 이 같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의 조화로움 속에 건축물을 올렸다고 하니 그 정성이 대단하다. 구불구불 자연 암반 위 정자를 받치는 기둥들은 하나같이 반듯한 것이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정자의 무거움을 받치고 있었다. 정자에 30~40명이 한꺼번에 올라가도 걱정 없다고 하니 10여개의 기둥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마루에 올라서니 앞쪽 소나무와 계곡이 하나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냈다. 마루 중앙 사방이 문턱이 있었다. 배정경 해설사는 이는 판방으로 사방을 판재로 둘러 추위 등을 피할 수 있게 만든 방이라고 설명했다. 구불구불 서까래와 기둥. 정자에 사용된 목재들이 제각각 형상으로 정자를 형성하고 있었다. 현대의 다듬어져 정형화된 나무들과는 비교되는 자연의 미가 그대로 느껴졌다. 거연정 인근의 기암괴석들에는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글들이 곳곳에 전해지고 있어 더욱 멋을 자아내는 것 같았다. 화림동 계곡 그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선경을 자랑하는 거연정. 이름 그대로 빼어난 자연 속에 내가 녹아 들어가 너무나도 편안한 느낌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 433호 거연정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대표격인 거연정(居然亭). 거연(居然)은 주자의 시 정사잡영(精舍雜詠) 12수 중에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딴 것으로. 물과 돌이 어울린 자연에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거연정의 역사는 1640년께로 올라간다. 고려시대 말기 전오륜(全五倫)의 7대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전시서(全時敍)가 1640년경 서산서원을 짓고 그 곁인 현 거연정 위치에 억새로 만든 정자를 처음으로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거연정에 들어가는 화림교(花林橋) 앞에는 ‘옛 안음현 서쪽 화림동의 새들(鳳田里) 마을이 있으니 임천(林泉)이 그윽하고 깊으며 산수가 청명하고 아름다운 데. 화림재(花林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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