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연대를 가기위해 백운산 자락 입구에 섰다. 하얀 가르마 같은 길이 보였다. 긴 꼬리를 가진 길은 굽이지고 또 굽어졌다. 산길을 걸었다. 저 멀리 할머니 한분이 걸망을 등에 지고 걷고 있었다. 잠시 새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꼬부랑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헛것을 보았나? 순간 온몸에 좁쌀 같은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다시 할머니의 회색빛 바지자락이 보였다. 할머니는 고불거리는 산길을 포기하고 물줄기가 졸졸거리는 계곡을 오르고 있었다. 많이 다녀 본 길인지 오직 발걸음만 쳐다보며 고개 한번 들지 않았다. 저 걸망 속에는 분명 부처님께 공양 올릴 쌀이 들었을 것이다. 그럼 분명히 상연대를 찾아가는 길이리라. 나는 남편과 함께 할머니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계곡은 가팔랐다. 헉헉 숨이 차서 돌 위에 주저앉아버렸다. 어차피 바쁠 것이 없는 산행이었다. 깊은 숨을 쉬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랑거리는 물줄기로 눈길을 돌렸다. 물줄기는 그리 굵지 않았다. 저 물은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백운산 정상에 작은 연못이라도 있는 것일까. 드디어 하늘과 맞닿은 곳에 기와지붕 끝자락이 아른거렸다. 고개를 한껏 쳐들고 하늘을 보듯 위를 보면 가파른 계단이 보였다. 그 끝에 상연대가 있었다. 백전면 백운리에 있는 상연대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암자이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아픈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던 중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로부터 ‘상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상연(上蓮)은 ‘연꽃의 위’라는 뜻이다. 그 자리는 부처님의 자리이기도 하다. 지나온 계곡 길을 더듬어 보니 마치 연꽃의 대롱줄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줄기를 쫓아 연꽃 위에 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물줄기가 끝나는 곳에 있는 연꽃송이 같은 작은 암자. 그곳이 바로 상연대였다. 암자는 우뚝 솟은 백운산 자락에 제비둥지처럼 자리 잡았다. 주위는 바위와 나무들이 병풍을 두른 듯 했다. 그리 넓지 않은 터에 원통보전(圓通寶殿)이 소박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앞에는 가파른 경사지에 축대를 쌓고 마당을 조금 넓혔다고 한다. 마당이 끝나는 곳에 낮게 담을 두르고 텅 빈 하늘과 아름다운 숲을 가득 펼쳐놓았다. 목조관세음보살(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56호)이 계신 원통보전에 들어섰다. 법당은 정갈했다. 크고 화려한 불상이 아니라 자그마하고 정겹게 느껴지는 관세음보살이 앉아 계셨다. 바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 분이었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불상으로 조각기법이 뛰어난 작품이다. 네모진 상호에 살짝 치켜 올라간 눈초리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인(手印)은 아미타인으로 첫째 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구부려 맞댄 채 오른손은 가슴부위에 들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오른쪽 손가락에는 정병(淨甁)병이 걸려 있었다. 그 병에는 중생의 고통이나 아픔을 해결해 주기 위해 감로가 담겨있다고 한다. 바로 자비의 상징물이었다.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무연히 백팔 배를 올렸다. 어쩌면 나는 정병속의 감로를 구걸하기 위해 절을 올렸을지 모른다. 처음 절을 할 때는 감사의 말을 속삭였다. 하지만 굽혔다 일어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비찍비찍 땀이 흘렀다.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팠다. 괜히 절을 시작했다는 후회의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절하는 횟수가 백을 넘어가니 다시 신심이 몰려왔다. 간사스런 마음이었다. 절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생활 속에서 딱딱하게 메말랐던 마음이 조금은 촉촉해지는 듯 했다. 그리고 까닭 없는 환희(歡喜)가 몰려왔다. 환희로움이 바로 관세음보살이 내리는 감로 한 방울이 아니었을까. 법구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마음은 들떠 흔들리기 쉽고 지키기 어렵고 억제하기 어렵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마음 갖기를 활 만드는 사람이 화살을 곧게 하듯 한다.’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또한 세상살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순간만이라도 자신을 버리고 굽히다 보면 흔들리고 휘어지는 마음을 조금은 바로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법당 밖에서 바람이 풍경을 두드린다. 고즈넉한 산사에 뎅그랑 뎅그랑 풍경소리가 떨어지고 있다. 나는 상연에서 풍경소리를 줍는다. 환희를 줍는다.  * 상연대는 임로가 있어 자동차로도 올라갈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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