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겨울. 대구에서 학교 폭력으로 인하여 한 학생이 자살한 사건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대구에서 연수중이었는데 교사라는 신분 탓에 택시기사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습니다. 연수원에 돌아와서도 교사로서 매도되는 자괴감과 무력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연일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학교폭력. 성폭력. 집단따돌림. 교사 고발 및 폭행. 청소년 범죄. 자살 등은 어디에서 연유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학교 교육의 부재 탓이라고 탄식합니다. 우리 교육은 학업 성취도 평가. 교원평가. 학교평가 등을 통하여 조기교육이나 영재교육. 학업성취에 매진하여 학력 향상이나 학교 성과 지표 제고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아이들이나 학부모도 오직 성적 향상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인성교육은 부가적인 것으로 수업의 연장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성적을 올려주는 교사는 필요할지 몰라도 자신들의 잘못을 꾸지람하는 교사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사의 훈육이나 지시에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거리를 해대는 학생도 늘고 있습니다. 교사를 존경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교권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교단에는 참다운 스승들이 고립되어가고 있습니다. 교사의 권위는 학생에 대한 강압이나 교과의 전문성만으로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교권이 침해받으면 인성교육은 효력을 상실합니다.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폭언과 협박. 폭력은 학교 교육을 황폐화시킵니다. 교권이 추락하면 학생들도 교사를 무시합니다. 교단에 선 교사의 권위가 존중되었을 때 비로소 학생의 인성교육이 가능합니다. 교육이 바로서려면 교권이 바로서야 합니다. 세계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밤늦은 시간까지 오직 공부에만 몰두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경쟁사회에서의 성적 제일주의는 당연히 서열이 매겨져서 뒤처지는 아이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학업에 흥미를 잃게 되면 또래집단을 이루어 비행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비행이 반복되면 죄의식도 반감하고 아이 스스로 문제아로 행동하고 자존감을 상실하여 더욱 폭력적이고 반항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렇다고 선량한 아이들을 위해서 비행 학생을 학교에서 내몰아낸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은 ‘막가파’처럼 사회악으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 사회와 국가로부터 사랑과 교육을 통해 바르게 자라나야 할 미래세상의 희망입니다. 어떠한 아이도 포기해서는 안 되는.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조나단의 소설 ‘갈매기의 꿈’의 구절처럼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는 말처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하여 교육은 단기적인 학업 성취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마라톤 같은 인생을 가치롭고 행복하게 완주할 수 있는 ‘좋은 인성’을 함양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고위층의 각종 비리와 범죄는 성적 만능주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회의 발전은 좋은 인간이 우선시 되는 사회 풍토에서 비롯됩니다. 인성이 나빠도 공부만 잘 하면 된다는 성적 만능주의가 우리 아이들의 가치관을 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공부만 잘 하면 비뚤어진 심성도 용납되는 사회.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인성과 상관없이 우대받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입니까? 미국 미래교육학자들은 미래를 이끌어갈 인간상으로 좋은 인성과 창의성을 꼽았습니다. 미래 사회에서는 다양한 가치를 수렴하고 통합할 수 있는. 좋은 인성을 갖춘 사람이 가장 우대받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좋은 인성은 자신의 삶을 가치 있고 행복하게 가꾸는 토양임을 우리 아이들에게 심어주어야 합니다. 또한 좋은 인성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인간 세상을 이루는 원동력임을 주지시켜야 합니다. 다음 회에도 ‘인성교육’이란 주제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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