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좋든 싫든 일본을 이웃으로 하여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웃이 상냥하고 예절 바르며 점잖으면 더할 나위 없이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늘 투견처럼 털을 곤두세우고 금세라도 물어뜯을 것처럼 으르렁거린다면 참으로 힘든 이웃이로구나 하고 견디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이웃을 대비하는 일은 사나운 개를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 채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집으로 달려들 수 없게 울타리를 치고. 어쩌다가 집 밖을 나갈 때는. 우리 몸을 지킬 수 있는 몽둥이나 어떤 종류의 무기를 마련해서 나들이를 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혹시 그 개를 정당방위로 다치게 하거나 죽게 만들었을 때. 우리는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이웃의 증언도 필요하겠지만. 요즘 같으면 동영상 자료라든지 사진 자료. 그 개로 말미암은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병원 진단서나 신문 보도 자료 같은 것을 차곡차곡 잘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되레 개를 죽인 사람으로 몰아세울 때 반박할 자료로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불행하게도 으르렁거리는 이웃 일본을 상대하며 사는데 꽤 진을 빼며 살고 있습니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느니. 침략은 관점에 따라야 하는 유동적인 개념이라느니. 종군위안부가 돈벌이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간 소녀들이라느니 하는 망발을 들으며. 마치 쉽게 달아오르는 냄비처럼 부르르 끓어오르며 일본을 나무라고 꾸짖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잠잠해지며. 일본을 이웃으로 여기며 살아야 한다고 공자 비슷한 소리를 중얼거리며 삽니다. 일본인들이 보기에 얼마나 만만해 보일까 생각하면. 부끄럽고 화가 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침략국의 지위에서 패전국이 되고. 그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철저히 사과하며 오늘날까지 자기들의 만행을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교육을 하고 있는 독일과 자주 비교하게 되는 것은 일본의 오늘날 행태와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화가 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이웃을 가진 우리가 매번 당할 때마다 화를 내는 일로 끝난다면 저들은 여전히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똑같은 짓거리를 되풀이할 것이 눈에 빤히 보입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35년간이라는 한 세대가 넘는 세월 동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아가는 방도를 찾아야 했던 소시민들에게는. 날을 세워가며 그들을 비판하는 일로 열정을 쏟으면서. 우리가 일본인들에게 당했던 피해를 제대로 정리하고 증빙 자료를 찾는 일 따위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이 보이는 것이 정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적 피해 자료. 물적 피해 자료. 정신적 피해 자료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리하고. 끝까지 추적하여 그 백서를 발간하겠다는 사람들은 어째서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독일 전범자들의 만행을 지구 끝까지라도 추적하여 밝혀내는 유대인들의 끈질긴 노력을 보고 우리는 더욱 심한 자괴감을 느끼게 됩니다. 늦었지만 우리도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더 이상 자료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것들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생체실험을 했던 일본인의 만행. 어린 소녀들을 차출하여 젊은 군인들의 성적 노리개로 삼았던 비인간적인 범죄 행위. 우리의 역사적 자료를 훼손하고 왜곡하며 우리 민족정기를 끊으려고 했던 어용학자들의 주장들.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갖은 회유와 위협을 통해 저들의 앞잡이로 만들었던 간사한 술책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기록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루어진 일제만행 백서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야 합니다. 우리 근대사가 이런 아픈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다면. 미친개에게 물리고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길 없는 이웃의 꼴을 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숨은 자료를 발굴하는 사람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으며 채록하는 사람들이 나라 곳곳에서 활약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일에는 적어도 국가적인 후원이 있어야 하고. 조직적이고도 자발적인 단체가 해 내야 할 일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대학들이 이런 일을 해 내야 합니다. 다시는 단발성이고 무계획적이며 흥분 잘하는 목소리로 떠들다가 마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참에 끊어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