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마천면은 한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에서 자라나는 닥나무를 채취해 이것을 찌고 벗기고. 삶고. 뜨고. 그 어느 곳보다 질 좋은 한지를 생산해 냈다. 그 중에서도 창원 마을은 한때 대부분의 주민들이 한지 만드는 일에 전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외국의 종이들이 싼 값에 들어오고. 집들이 개량돼 창호지나 벽지를 한지로 바르지 않으면서 한지의 수요가 대폭 줄어 그 명맥마저 위협받고 있다. 창원마을 아니 함양군에서 유일하게 한지를 만들고 있는 이상옥(67)·윤공림(63)씨 부부. 이씨 부부는 직접 재배한 닥나무를 채취해 솥에서 찐 뒤 익으면 껍질을 벗겨 며칠간 말리고 차가운 물에 담근 뒤 얼리면서 속을 불려 긁어내는 과정을 통해 한지의 원료를 만든다. 이 원료를 닥풀과 함께 (한지를 뜨는)통에다 넣어 한지를 생산한다. 이씨는 2번을 떠 1장의 한지를 생산한다. 일반적으로 1번 떠서 2장을 생산하는 방식과 달라 한지가 질기고 잘 찢어지지 않는다. 이씨의 한지가 최고 품질로 인정받는 이유이다. 이상옥씨는 “옛날에는 문풍지 바르고 벽지 바르고 한지가 없어서 못 팔았지. 근데 지금은 외국에서도 들어오고 사용할 곳이 없어져 팔리지가 않아”라고 말했다. 그는 직접 재배한 닥나무만을 고집한다. 또한 닥나무와 함께 필수적인 닥풀도 직접 재배해 두드려 풀을 만들어 사용한다. 모든 것이 순수 수작업.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배우기에는 여간 어렵다. 윤공림씨는 “내 사위가 종이 만드는 일을 해 본다고 해서 펄쩍 뛴 적이 있었다. 어렵게 딸 공부시켜 도회지에서 직장생활 하는데. 들어와서 종이 만든다는 생각을 해 봐라. 돈이 되면 시키겠는데 그것도 아니고...”라고 말한다. 이상옥씨가 종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열네살 때. 지금 예순일곱이니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직 한지 만드는데 바친 것이다. 이상옥씨가 종이를 만들기 이전에 그의 아버지. 또 그의 할아버지가 종이를 만들었다. 3대째 이어오고 있는 한지 명가인 셈이다. 이씨는 “이거 해가지고는 밥도 못 먹는다”며 아쉬워했다. 수작업으로만 이뤄지다 보니 하루 100장 안팎으로 밖에 생산할 수 없다. 1년에 2달 가량 생산에 전념하니 약 5.000장 정도 생산이 한계다. 힘들게 생산된 한지가 엄청난 고가에 판매되는 것도 아니다. 가로 석자 세치. 세로 두자 두치 이렇게 한 장에 3.000원에 판매된다. 생산된 한지를 찾는 이들은 스님들이나 화가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들어 문화재청과 대학 등 미술 관련 사람들이 사서 쓴다. 이씨는 “예전에는 창원마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이를 만들었다. 인근 지역은 물론 함양군 내에도 곳곳에서 종이를 만들었는데. 그때는 종이가 없어서 못 팔았지”라며 좋던 시절을 떠올리는 듯 했다. 지금은 군 내 유일한 한지 생산 공장이다. 한지 한 장이 나오기까지 닥 채취하기. 찌기. 껍질 벗기기. 물에 담그기. 삶기. 씻기. 두드리기. 해리. 종이 뜨기. 말리기 등의 과정을 거친다.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며 과정 모두가 종이의 질을 판가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중 중요하지 않은 공정이 없다. 종이를 일일이 긁어서 작업하는 곳은 우리나라에서도 몇 곳 되지 않는다. 이씨는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는 것이다.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 지금도 건강이 좋지 않아 힘들게 생산할 뿐 누가 이것을 배우려 하지도 않는다. 내가 그만두면 이제 함양에서는 종이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옛날 방식 그대로 생산한다. 표백제 같은 것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생산된 한지는 10년이 지나도 좀이 쓸지 않는다. 이씨는 “한지를 세장 네장 겹치면 총알도 못 뚫어. 예전에는 이 종이로 갑옷도 만들었지. 지금은 마천 참닥. 지리산 참종이로 불러. 이건 서울 사람들이 부르는 거야. 수입 종이가 아무리 좋다 해도 품질은 못 따라가지”라며 한지의 우수성을 자랑했다. 아내인 윤공임씨도 친정에서부터 종이를 만들어 왔다. 지금은 종이 뜨는 것은 남편이 하고 대신 대부분을 일들을 그의 아내가 도맡아 하고 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다. 2002년에 내습한 태풍과 집중호우로 공장이 부서지고 재료가 떠내려가 다신 한지 만드는 일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가족의 권유로 올해 초 가업을 잇기로 결심하고 집 근처에 공장을 지었다. 그러나 이상옥씨는 “한지만 만들어서는 굶어 죽어”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은 알고 있지만 시장 논리에 의해 차츰 설 자리를 잃고 이제는 네이버 백과사전에 ‘한지’라는 것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뿐이다. 조금은 비싸지만 그래서 품질이 우수하며. 조금은 만들기 힘들지만 그래서 더욱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우리 한지. 함양 한지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옥·윤공임 부부. 이상옥씨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조만간 힘에 부쳐 종이 만드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도 배우려 하지 않으니 누군가에게 전수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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