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창(鄭汝昌) 선생님께 여기 함양은 봄이 한창입니다. 아침부터 고양이털처럼 포근한 햇살이 어깨에 내려앉았습니다. 이 봄날 나는 가만히 집에 있을 수 없어서 무작정 길을 나섰습니다. 길을 가다보면 산수유나무가 파릇파릇 새잎을 틔우고 논에서는 양파와 마늘이 한껏 파릇함을 자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이곳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남계서원(灆溪書院)에 도착했습니다. 혹시 선생님이 저를 부르신 것은 아닌가요? 선생님 알고 계십니까. 명종 7년에 선생님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이 서원이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명종 21년 서원 곁에 있는 시내 이름을 따서 ‘남계(灆溪)’라는 이름으로 사액(賜額)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풍기 소수서원 다음이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몇 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서원 옆으로 몇 채의 민가가 있었습니다. 풍영루(風永樓)의 대문은 굳게 닫혀 바람에 밀리지 않으려 삐거덕삐거덕 소리를 내고 있었지요. 저는 풍영루 너머의 모습이 보고 싶어 키 낮은 담장에 발끝을 세우고 서원을 엿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볼 수 없어 그만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 민가는 사라지고 서원의 옛 풍경을 복원하려 공사 중이었습니다. 또한 굳게 닫혔던 대문도 방문객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는 이곳을 마음껏 둘러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아름드리 기둥을 쓰다듬으며 옛 선현들의 손길을 느껴보고 대청에 앉아 봄날의 한가로움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 편지도 써 봅니다. 저는 명성당(明誠堂) 대청에 걸터앉아 방명록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명성은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로 “밝으면 성실하다(明則誠)”에서 취했다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송나라 때 성리학자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영향을 받아 매화와 연꽃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애련헌(愛蓮軒). 영매헌(咏梅軒)을 짓고 그 앞에 연못을 만들고 연꽃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매화를 심었습니다. 이곳에도 얼마 전까지 하얀 매화가 피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누렇게 변해버린 꽃잎이 바람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활짝 핀 매화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잎도 없는 가지에 작고 소담스러운 꽃망울을 조롱조롱 터트렸을 것입니다. 작은 꽃송이들은 모듬모듬 모여서 하나의 커다란 꽃이 되었겠지요. 한 번도 선생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 매화나무에서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가지에 의지해 하얗게 피었을 꽃송이가 어쩌면 선생님의 학문과 덕행을 사모했던 유생들이 꽃송이로 환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저는 강당을 돌아 사당 밑에 섰습니다. 사당에는 정여창 선생님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정온(鄭蘊)선생과 강익(姜翼)선생의 위패가 각각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저는 죄지은 사람처럼 살금살금 계단을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감히 문을 열지 못하고 그냥 기웃거리기만 하였지요. 왜일까요. 아무도 없지만 함부로 들어갈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엄숙함이 저를 막았는지도 모릅니다. 선생님께서는 스스로를 낮추어 ‘한 마리의 좀’이라는 뜻을 가진 ‘일두(一蠹)’를 호로 사용하셨지요. 이는 정이천(程伊川. 중국 북송 때의 유학자)의 ‘천지간 한 마리 좀에 불과하다’는 말에서 인용한 것이라 했습니다. 어쩌면 독서를 좋아하셨던 선생님은 좀처럼 책속에 파 묻혀 학문만 하기를 원하셨던 것은 아니었나요. 어제 묵은 책을 읽다 좀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후다닥 달아나는 미물을 휴지로 눌렀습니다. 아주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섬유와 나무를 좋아하는 좀. 그 미물은 나무로 만들어진 책 또한 좋아합니다. 아마 묵은 책 속에서 다시 좀을 만난다면 저는 문득 선생님을 떠올리겠지요. 그리고 그 녀석을 그냥 내버려둘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의 이름에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 녀석쯤은 살아남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은 저 또한 한 마리의 좀처럼 책속에 파 묻혀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남계천에 노을이 물들고 있습니다. 선생님 이제 두서없는 이야기를 그만 줄여야겠습니다. 언제 선생님의 생가를 방문하는 날 다시 안부 여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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