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네 산과 들과 냇가에는 한창 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집 좁은 마당에는 교회를 구석구석 섬기시는 분이 몇 년 전 심은 목련나무 묘목이 어느덧 자라나서 금년 봄에 드디어 꽃망울을 터트리더니 꽃을 활짝 피어가고 있습니다. 그 동안 구석에 있어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거름 한번 주지 않았던 나무였는데. 삐쭉한 작고 볼품없는 꼬챙이 같은 나무가 자라서. 이렇게 탄성을 자아낼 꽃을 피워낼 줄이야! 어느 순간에 꽃을 피워 눈에 들어온 목련나무 앞에서 그저 미안할 따름입니다. 난 잘 다가가 주지도 않았고. 기대도 없었던 존재였으니까요. 그저 햇빛도 금세 넘어가는 외진 구석에 서 스스로 외로이 자라다가 이젠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이렇게 그냥 주어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오늘도 대지는 나를 굳건히 받쳐주고 있지요. 또한 아침에 지저귀며 노래하는 새는 한번도 내가 기르거나 먹이를 준 적이 없는데. 늘 우리 집 창가에서 무료공연을 펼쳐주곤 한답니다. 산에 핀 진달래는 겨우내 갑갑했던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는 색깔로 옷을 입고. 내 마음을 활짝 피어나게 합니다. 우리는 이토록 날마다 과분한 은총을 받고 살면서도 오히려 과도한 보상과 요구를 하면서 살지요. 그래서 모든 이 땅의 존재를 에리히 프롬이 말한대로 소유양식으로 대합니다. 그 있는 존재 속에 행복이 있고. 나누는 가운데 기쁨이 있지만. 사람만이 유독 무한개발과 탐욕을 부리며 과도한 이윤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이젠 남아있는 은총도 빼앗기며 살아갑니다. 요르단의 남부에 있는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는데. 점점 함부로 물을 쓰고 인간의 개발로 말라간다는 보도를 어떤 텔레비전 여행프로그램에서 보았습니다. 그 사막의 오아시스는 이제 관광객이 줄어들고 수입이 줄자. 고육지책으로 지하수를 뽑아서 인위적으로 오아시스를 간신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치 지금 지구의 마지막 운명을 보는 듯 합니다. 있는 것에 감사하고. 우리 사람들이 탐욕을 덜 부리면 좋겠습니다. 한떨기의 꽃에도 경외하는 마음과 함께 우리의 존재도 있는 그 자체가 아름답고. 남에게 복을 끼치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찾아와 준 봄이 언제까지나 또 다시 우리에게 찾아와 줄지요... 오늘도 봄의 은총을 이렇게 누리면서도 봄이 영영 다시 오지 않을까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오늘도 내게 주어지는 목련꽃의 위로가 크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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