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남덕유산 명문가에서 태어난 함양. 봄이 오니 강산이 꽃천지 입니다. 봄길이 뻥뻥 뚫려 사통팔달 백두산까지라도 금방 달려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봄도 되고 선비의 고장 함양에 사는 시인이니 초량선비가 되어 선비문화탐방로를 유유자적 걸어 볼까나 집을 나섭니다. 이 선비길을 걷고 나면 서당개가 아니더라도 월월(月月) 풍월(風月)을 읊는답니다. “게. 누구 없느냐? 떡 덩어리 두어 개와 시원한 산양삼 막걸리 두어 병 챙겨 놓아라. 그리고 안방마님에게도 오늘은 내외가 같이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일러라. 내 오늘은 화림동 계곡으로 시 한수 읊으러 갈까 하노라. 으흠.” 신라 시대부터 천년숲 상림을 간직한 함양은 영남 선비문화와 정자문화의 보고였습니다. ‘좌안동 우함양’으로 함양은 일찍부터 묵향의 꽃이 핀 선비골 고장이라 일컬었지요.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물 맑고 호젓한 숲.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정자가 있고 향교가 있고 고가가 있습니다. 유서 깊은 함양향교와 안의향교가 있고. 일두 정여창 선생의 학문을 기리기 위해 세운 남계(灆溪)서원. 탁영 김일손 선생이 공부하던 청계(靑溪)서원. 송호(松湖)서원을 비롯해 누각과 정자는 100여개가 넘으니 과연 정자문화의 보고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각으로는 학사루(學士樓). 광풍루(光風樓). 함화루(咸化樓)가 있어요.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 아름다운 우리 길 ‘역사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선정한 이 선비길은 거연정∼동호정∼농월정… 약 6.2km. 2시간 걸리는 쉬운 산책코스입니다. 이 화림동 계곡은 함양팔경 중 제4경 화림풍류로 8개의 못과 8개의 정자가 있어 팔담팔정(八潭八停)이라 부르기도 했지요.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이 흘러내리면서 냇가에 기이한 바위와 담소를 만들고 농월정에 이르러서는 반석 위로 흐르는 옥류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장장 60리 굽이쳐 흐르는 산과 물과 숲과 계곡이 이어진 길. 자연 풍광을 구경하며 선비풍 걸음으로 걷는 산행길이야말로 정일품 코스지요. 이 선비길은 과거를 보기 위해 영남의 선비들이 넘어가던 덕유산 육십령 고갯길로 이어집니다. 괴나리봇짐에 미투리 두어 짝 메고 산 넘고 물 건너 걷다가 정자에서 쉬고 게르마늄 생수로 목을 축이는 그 물맛의 진수를 누가 잊을 수 있겠습니까. 옥동자를 가지신 임산부들은 꼭 이 길을 한번 걸어보세요. 장원급제하여 어사화를 쓰고 돌아오는 나라를 이끌 대학자의 자녀가 틀림없이 태어나겠다는 말씀입니다. 자연과 하나 되어 있다는 거연정(居然亭). 이름부터가 맛깔납니다. 고려 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전시서(全時敍)가 1640년경 서산서원을 지었으나 화재와 서원철폐로 7대손인 전재학(全在學). 전민진(全愍鎭) 등이 재건립 한 정자입니다. 이 거연정에서 사대부 선비들은 시를 읊고 호연지기를 키우며 활을 쏘았다고 하지요. 계곡물 흐르는 건너편 숲 과녁을 향하여 시위를 당겨 살을 놓으면 피융! 활은 날아가 과녁에 쿵! 꽂힙니다. 나무 뒤에 숨어있던 하인이 나타나 하얀 깃발을 들고 원을 그립니다. “하.하.하. 명중했소이다. 내가 맞혔으니 오늘 술값은 내가 내리다. 그 대신 벗께서는 마눌님 젖 더 먹고 와서 내일 한판 다시 해 보심이 어떠시겠습니까? 하.하.하.” 계곡 주변으로 야생화 들꽃이 양지바른 곳에 나와 고개를 들고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습니다. 맑은 물들이 앞 뒤 가리지 않고 마구 달려 나가다 너럭바위에 나자빠집니다. 이 거연정 가까이 정여창 선생이 자주 산책했다는 군자정을 보게 됩니다. 전시서가 서산서원을 짓고 공의 5대손인 전세걸. 세택이 스승 일두 정여창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1802년 이곳에 정자를 짓고 군자가 머무르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고 하였다는군요. 군자는 비가와도 경박하게 뛰어서는 안 되지요. 그대로 비를 다 맞고 걸으며 “허.허. 거 참. 한번 시원하다. 흠흠.” 군자 되기가 그리 쉽나요? 사람들은 겉만 내세우는 허세라고 꼬집습니다만 뇌하부동하지 않는 그런 꼿꼿한 선비정신이 있어 충신이 생기고 나라를 지키고 후학들을 길러냅니다. 건너편 울창한 솔숲엔 잘 지어진 팔각형 누각인 영귀정(詠歸亭)이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영귀정과 군자정을 오고갈 수 있는 출렁다리 하나 놓여 있다면 그야말로 선계가 따로 없는 비비비비 비경인데 아쉬워라! 누구 거기 출렁다리 놓아 줄 사람 없소? 띵까. 띵까! 군자정과 영귀정에서 설렁설렁 쉬엄쉬엄 한 사십분 계곡을 따라 숲길을 걷다보면 화림동의 하이라이트 동호정이 나옵니다. 조선 선조 때 학자인 동호 장만리 공의 호를 따서 1890년에 그분의 고향에 세운 것이 동호정입니다. 뒤로 웅장한 황석산이 인자한 아버지처럼 멋지게 팔 버리고 가슴에 동호정을 품고 있지요. 미끈한 차돌바위 바위로 콸콸콸 흐르는 시원한 급류. 그 한 가운데 해를 가릴만큼 크다는 차일암 너럭바위를 보면 이거 이거 장난이 아닌데 하다가 함양관광문화해설사 아가씨의 앵무새 설명을 들으면 ‘그만 나 집에 가지 않고 여기 살랍니더. 저 동호정 정자나 나 주이소.’ 하게 되지요. “저 바위가 영가대인데 명카수들이 노래를 불렀습네다. 저 바위가 악기를 연주하는 금적암. 술을 마시며 음악을 즐기던 차일암은 수백 명이 앉아도 끄덕 없습네다. 무릉도원이 따로 있습네까? 이 계곡에서 다시한번 시조창이나 사물놀이나 K-Pop을 들을 수 있는 무대가 펼쳐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하트하트! 히트히트!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