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이 작품 소재입니다” 마천중학교 류준열(57) 교장이 세 번째 수필집 ‘무명그림자’를 출간했다. 지난 2003년과 2007년에 이은 ‘무명그림자‘ 세 번째 작품집을 출간한 것이다. 첫 번째 작품이 나온 후 1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세 번째 작품집은 그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류준열 교장은 교육계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글 잘 쓰는 선생님이다. 평소 글쓰기를 즐기는 류준열 교장이 쓴 ‘무명이야기’에 대해 들어봤다. 처음 ‘무명그림자’를 접했을 때 무명이란 단어를 ‘無名‘으로 알았다. 그러나 ’無明’이라고 친절히 설명했다. 無明은 불교 용어 중 하나로 ‘잘못된 의견이나 집착으로 인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모든 번뇌의 근원이 됨)’를 뜻하는 것이었다. 류 교장은 작품집을 통해 “문학성과 예술성을 추구했다기보다 마음에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려고 했다”며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고.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드러낸 마음의 편린으로 너그럽게 봐 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매일 이어지는 참선과 108배를 통해 세상의 모든 일들을 모으고 모아. 마음속 깊이 끌어당겨 관(觀)으로 풀어내고 있다. 류준열 교장은 “일상사 모든 것이 관의 주제가 될 수 있고.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다”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짧게 표현하고 사물을 봤을 때 느끼는 것들을 술술 풀어내고 있다. 산문도 아니고 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 번째 작품집 ‘무명그림자’는 1부 수필집과 함께 2부 ‘관(觀)’ 연작 글이 실려 있다. 1부 수필에는 21개의 주옥같은 수필들이 류 교장의 다양한 생각들과 어우러져 있다. 2부 ‘관‘에는 그가 아침의 108배와 저녁시간의 참선을 통해 바라본 세상과 그가 삶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특히 그의 진보적인 글들이 다수 실려 있어 우려를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해 류 교장은 “나는 원칙과 상식을 가장 좋아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 같이 좋은 잣대가 어디 있겠느냐. 이 글은 거기에 맞춰서 쓰여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내용 중에는 그가 다닌 해외의 명소들에 대한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1년에 2회 정도 해외여행을 다니는 그는 그 지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상식 하나가 늘 수 있도록 풀이를 많이 했다. 그 나라의 핵심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며 여행지에서 느꼈던 마음의 편린들을 읽기 쉽게 표현해 놓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류준열 교장의 글쓰기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시작됐다. 경상대 국어교육과를 전공한 그는 써클 ‘전원문학’에 들어가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교단에 들어가면서 글쓰기를 쉴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류 교장은 한때 시간이 없어 술을 마시지 못할 정도로 술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류 교장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 2000년 5월 18일 직장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해야 했다. 이것이 전화위복이었을까. 수술 이후 힘든 생활은 그의 꿈이었던 글쓰기로 이끌었다. 아픈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2002년 3월 ‘문예사조’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고 2003년 첫 수필집 ‘무명그림자’를 펴내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가끔은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 아니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읽는 이들이 마음을 공감하게 하는 글을 써보고 싶어 펜을 놓지 못하고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류준열 교장은 지난 1981년 9월 백전중학교 교사로 첫 교단에 서게 된다. 이후 지역 학교에서 교단에 서다 지난 2012년 마천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류 교장은 이번 세 번째 작품집이 출간되기까지 사연도 있다. 그의 글 중에는 교장으로서 조금은 위험할 수 있는 발언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는 “2010년 책을 내려고 했지만 내용 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4대강 사업’ 등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있어 지난해 대선일에 맞춰 출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내용을 자기 검열을 통해 많은 부분의 편집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오해의 소지를 가질 수도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그는 특히 지역 문인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함양과 가까운 산청이 고향으로 ‘천상병 문학제’를 만들어 추진위원장을 맞고 있으며 산청문인협회 초대 회장과 다양한 오프라인 문인 동호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류준열 교장은 “내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글을 쓰고 싶으면 쓰면 되고. 이름을 날릴 것도 아니다. 내 쪼대로 눈치 안보며 글을 써 나갈 생각”이라며 호탕하게 말하기도 했다. ‘죽기전에 소설 한편 써봐야지’ 이것은 류준열 교장의 꿈이다. 소설은 퇴직 이후나 준비하려 한다. 자료 수집도 해야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릴 적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그도 중장편 소설 한권을 들고 또 다시 파란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 <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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