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천면 원기마을은 옛날 원님이 살았다고도 하고 원님이 쉬어 갔다고도 하는 그런 뜻에서 유래 되었다. 아름다운 엄천강이 흘러 정오가 되면 강물이 반짝반짝 빛나며 여름에는 개울에서 멱감고 겨울에 눈 오면 곳곳의 천연눈썰매장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눈썰매를 실컷 타는 지리산 자락의 작은 마을. 원기마을이다. 지난 겨울 농한기를 맞아 우리 마을은 아주 소중하고도 행복한 추억을 함께 했다. 이름하여 공부방. 6·25난리. 한일합방 등 이 나라의 아픈 역사를 몸소 겪으신 어르신들. 학교라는 문턱도 가보지 못한 어르신들의 소원은 내 이름 석자를 쓰는 것과 은행가서 스스로 돈을 찾고 통장 관리하는 것이란다. 부끄럽고 가슴 콩닥거리지만 마을 새댁둘이 공부방 교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달간의 수업이 시작됐다. 하루에 국어 한 시간. 산수 한 시간. ㄱ.ㄴ.ㄷ.ㄹ... 1. 2. 3. 4... ㄹ이 제일 어렵고 4와 5. 6과 8. 9가 어렵다던 어르신언니들이 이제 숫자는 일에서 백까지는 물론 일부터 백만까지 익히고 구구단도 외운다. 한글시간에는 도시로 나간 자녀에게 알뜰히 농사지은 택배를 붙였던 주소를 직접 쓰고 편지를 적어 보냈다. “아들아 며늘아 모두 잘 있느냐? 항상 고맙다. 나는 한글. 산수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참 재미있다. 오늘은 우리가족 칭찬을 해볼란다. 잘한다 잘한다. 우리아들! 잘한다 잘한다 우리 며느리! 잘한다 잘한다 우리 손자.손녀! 우리 가족 모두 잘한다. 설날 때 만나자. 엄마가” 이렇게 말이다. 조상딸 어머니가 아들에게 받은 답장을 공부방에 들고 오셔서 눈시울을 붉힌다. “어머님! 막내 아들입니다. 어머니 편지 받고 바로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배우는 어머니도 그렇고 가르치는 선생님도 그렇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머니께서 편지로 칭찬글을 써주시니 이 아들 힘이 납니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다 오네요. 눈이 어두워 읽지 못하실까봐 컴퓨터로 편지를 쓰고 있으니 너무 성의 없다 생각 마세요. 어머니! 항상 몸조심하시고 이웃어르신들과 사이좋게 재미있게 신바람 나게 사세요” 우리 마을은 삼박자가 잘 맞는 좋은 마을이다. 공부하자고 제안하시는 이장님. 공부 함께하겠다고 선선히 받아들이는 새댁 선생님. 열심히 배우는 학생 할머니 언니들. 봄 농사철이 다가와 공부방 수업도 다음 겨울을 기약할 때가 됐다. 섭섭하고 아쉽지만 종강날 마지막 수업. ‘봄에는 밭 갈고 씨 뿌리고 감자심고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난다’ 공책에 써 본다. 받아쓰기 재밌다며 마지막으로 10문제만 하자신다. 종강날은 컨닝하도록 배려해 모두 백점을 받았다. 그 어렵다던 ‘휴천면’을 워처면. 휴처며. ‘경상남도’를 겨사나도라고 적고 배꼽 빠지게 웃던 추억을 뒤로 하고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을 잘도 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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