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을 지나 백전 가는 길에 벚꽃이 한창인 계절이 왔다. ‘봄바람이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안의 라디오 볼륨을 올린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입 속에서 흘러나온다. 음악과 차창으로 스치는 배경이 기분 좋게 한다. 요즘 방송이나 매체에서 ‘힐링’ 이라는 말을 많이 접하게 된다. 영어로 heeling. 그 뜻은 몸이나 마음의 치유이다. 방법도 음악. 댄스. 음식. 에코. 트래킹. 여행 등 다양하다. 나의 경우는 상림을 산책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슬픔이 가득한 어느 날 상림의 푸른 연잎을 바라보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연잎을 때리는 소리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았다. 비를 피하기 위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피아노 선율과 함께 자연의 북소리에 귀 기울였다. 북소리는 끊임없이 내 안의 감정과 부딪혀 편안한 마음으로 변하게 하였다.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도 내 나름의 힐링의 방법으로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이전 보다 더 자주 상림을 산책한다. 대도시에서 이 같은 장소를 시내 중심가에서 찾기란 어렵다. 적어도 30∼40분 이상은 걸려야 숲을 볼 수 있다. 지난 달 서울근교 어느 수목원을 가는데 자동차로 40분 소요거리를 5시간에 걸쳐서 갔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연휴기간이었고 그 주가 야경이 멋진 수목원의 이벤트 마지막주간이었으므로 많은 자동차 행렬이 이어졌던 것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동안 나는 초죽음이 되었다. 자동차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자리를 바꿔 타 봐도 멀미가 나고 괴로워서 남은 거리를 걷기로 했다. 고개를 세 고개 넘으니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녹초가 되었지만 아름다운 조명아래 자태를 뽐내는 나무들에 감탄하며 두 어 시간을 보냈다. 피로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동차를 타고 온 몇 시간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돌아갈 길도 걱정되었다. 이곳은 몸과 마음의 휴식이 되어 주는 수목원으로 알고 있었는데 몇 시간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이곳을 찾은 모두에게 짠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새벽부터 출발했던 사람들은 우리와 사정이 달랐을 것이지만 말이다. 한때는 도시생활을 동경하던 때가 있었고. 이 고장을 떠나 살아 보지 않은 나로서는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라는 노랫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단 며칠을 떠나 낯선 땅을 여행하고 돌아와 상림을 거니는데 상림이 세계 그 어디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다. 고향을 떠나 있는 이들에게 상림은 고향의 상징이란 것과. 이 고장 사람들에게는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힐링의 장소가 되어주는 곳이란 것을 상기하게 되었다. 걸어서 5분이면 닿을 거리에 살고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기분 좋던지. ‘나의 정원이고 나의 집 앞마당같이 여기며 살자’라는 생각을 하니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지저귀는 새소리 모두가 귀하다. 상림을 걸을 때 다양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책을 읽는 것에 비유하면 정독을 하는 사람. 시를 노래하듯이. 또는 속독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중에 나는 적어도 속독은 아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하는 모습들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광명소를 둘러보듯 걷다 보면 계절마다 다르게 변화되는 나무들의 모습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계절엔 나뭇가지에 뾰족한 새순이 돋아나고 하루가 다르게 연두 빛으로 물 드는 생장의 모습이 경이롭다. 스마트 폰으로 예쁜 모습을 담아 카카오 스토리에 올리면 고향을 떠나 있는 친구들이 댓글을 단다. 그들은 상림을 담아 보여 주는 수고에 고맙다며 고향을 잘 지키라는 당부를 한다. 고향을 찾는 친구들은 부모님을 뵈러 왔다가 그토록 그리던 상림 숲길을 여유 있게 걸어보지도 못하고 바쁘게 각자의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는 일이 더 많다. 나는 그런 친구들에게 항상 기쁜 맘으로 기꺼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다. 그렇지만 고향을 지키라니? 어떻게? 차를 몰아서 죽장마을 입구에 주차를 하고 물레방아가 마주한 벤치로 갔다. 자갈이 없어 사각거리지 않고 조용한 숲길 위에서 맨발이 되어 걸어본다. 차갑지만 부드러움이 전해진다. 고요 속에 천년의 뜨거운 심장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함양을 지키는 길은 이런 상림을 닮는 이가 되는 것이지 싶다. 그리고 각자의 일을 성실히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마주한 위천수가 묵묵히 흐르고 숲은 고요하다. 이런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요즘 함양 예술회관에서 경남연극제가 열리고 있다. 한편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연일 객석이 가득 채워진다니 다행이다. ‘연극을 본다는 진정한 목적은 연극에 매달려 삶의 의미를 찾아보겠다고 광대의 후예를 자임하는 자들의 눈물겨운 열정을 격려하기임. 따라서 관극은 일상의 한 부분을 지불해야 할 가치가 있는 행위임. 삶의 슬픔을 모르는 배우들이라도 열정을 보이면 격려해 줄 일’이라고 지인이 말해주었다. 함양 사람으로서 배우들을 격려하는 일도 함양을 지키는 일이고 ‘힐링’의 과정이라고 본다. 벚꽃 잎이 날리는 강변을 돌아 서늘한 숲속으로 들어가 예쁘게 돋아난 단풍잎 꽃을 사진 속에 담고 숲을 빠져 나온다. 뿌리작업이 끝난 연못에 물이 채워져 있다. 봄바람이 불자 잔물결이 수면 위로 퍼진다. 원앙 한 쌍이 유유히 노닌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