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박씨 대종회(회장 박충호)는 매년 3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실시하는 중시조(삼척박씨의 始祖) 春祭가 지난 3월31일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가성 시조묘정 현지에서 전국의 종친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春祭에 앞서 박충호 회장은 "서울. 부산. 대구 등 경향각지에서 공 사간 바쁜 일정에도 참석해 주신 종친여러분께 고맙다"는 인사와 더불어 "우리 종원들은 각자의 일정이 다 바쁘겠지 만 일년에 한번뿐인 시조(원경)님의 은덕을 기리는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주시기를 다시 한번 당부한다"고 했다. 삼척박씨의 시조(원경)의 묘소는 원래 삼척에 모셨으나 묘지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던 중 88년5월23일 삼척에 있는 박만금부터 묘지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삼척의 군지인 삼척읍지. 진주지. 박씨 신라세보. 한국인의 성보. 감수제 문집 등 삼척의 자료들을 모아 확인한 후 실묘된 묘의 유골을 수습하였으며. 관동대 유적 발굴팀에 의하여 94년4월23일 지석을 추가로 발견하여 시조의 묘임이 확인되었으며. 그동안 시조의 묘를 찾지 못해 애태우던 삼척박씨종원들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묘지의 터에 공단이 조성되는 등 국가정책사업으로 인하여 삼척시에서 이전해 줄 것을 통보받고 부득이 91년8월20일 삼척박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는 이곳 함양으로 모셔서 매년 3월에 제를 모시고 덕을 기리고 있다. 척성부원군 박원경은(陟城府院君 朴元鏡)(1322-1383. 죽숙왕 9년-우왕9년)은 三陟朴氏(삼척박씨)의 시조이다. 처음 이름은 원경(元鏡)이며 家乘에는 원경(元慶)으로 기록되어 있다. 호는 우호(禹浩)이다. 충숙왕(忠潚王) 9년(1322) 전리사총랑(典理司摠郞) 박순(朴淳)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부는 사림랑(仕林郞) 검교군기소감(檢校軍器少監) 박지문(朴之文)이다. 아버지 박순은 조부 박지문의 셋째 아들이다.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셋째아들 박언신(朴彦信)의 후손이다. 박원경이 삼척부원군(三陟府院君)에 봉해진 것을 계기로 그 후손들이 삼척을 관행으로 삼아 삼척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박원경은 공민왕(恭愍王) 2년(1353)에 등과하여 권지전교정자(權知典敎正字)에 임용되었다가 사농사승(司農寺丞) 감찰시어사(監察侍御史) 이부시랑(吏部侍郞) 지합문사(知閤門事)를 역임하였다. 공민왕의 배원정책으로 관제개혁에 적극 참여하여 개성윤(開城尹)에 임명되었다. 개성소윤으로 있을 때 홍건적(紅巾賊)이 침입할 조짐을 보이자 왕이 직접 그의 관사(관사)를 세 번이나 찾아가 방책을 논의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공민완 8년(1359) 12월에 홍건적의 모거경(毛居敬)은 4만의 군사를 이끌고 침입하였다. 이것이 홍건적의 1차침입이다. 홍건적은 서경(西京:평양)을 함락하였으나 다음해 2월에 도원수 이승경(李承慶)에 의하여 격퇴됐다. 공민왕10년(1361) 10월에는 반성(潘誠) 사유(沙劉) 관선생(關先生) 주원수(朱元帥)등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재침해왔다. 이들은 지금의 자비령(慈悲嶺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