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사 발간에 참고 됐으면..." 나는 함양군체육회에서 지나 온 반세기의 체육사를 책으로서 발간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반갑고 매우 뜻 있는 일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아쉽지만 2년 전에만 이런 사업이 이루어졌다면 체육역사나 이야기를 많이 알고 계신 선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선배들 중 훌륭하신 분들이 근년에 고인이 되시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나마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1945년을 전후해서 60년초 함양군 체육회가 창립될 때 초대 총무를 맡아 실무에 참여했던 필자가(1933년생) 그런대로 건강하고 기억력이 괜찮은 편이라 우리군의 초반부 체육사를 들은 대로! 아는 대로!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기술하여 후배 체육인들이 하고자하시는 일에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덧붙여 드릴 것이 이 기사에 등장하시는 함양 체육의 시조이시고 대 원로이신 선배님들과(110세에서 90세까지 오래 전에 작고하신 분들 포함) 그 유가족 되시는 분. 그리고 친지분들과 현재 스포츠를 하시는 선후배님들에게 이름자가 틀리거나 명예에 누가 되지는 않을지 매우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선 제가 기술한 이 글을 우리 함양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신문에 1차 공람케 하여 주변의 검증과 평가를 거친 후에야 군 체육회에서 참고 자료로 쓰도록 건의 드릴 것이며 단. 본 필자가 기술하는 범위와 한계는 제가 실무를 집행했던 것까지와 보고 아는 범위 내에서만 기술하였음을 양해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필자 체육관계 약력 함양읍 교산리 함양초등길 57-20 양갑용(81세) 1961년 함양군 체육회 1대 총무(전무이사) 1965년 함양군 정구협회 전무이사 1974년 함양군 테니스협회 전무이사 1985년 함양군 테니스협회 4대 회장 1988년 88서울올림픽 함양군 1번 성화주자 1970∼80년까지 체육회 이사 감사 15년 현재 함양군생활체육회 감사. 게이트볼 군 수석 부회장 함양체육의 발자취 궁도(국궁) 함양군의 궁도는 1930년대부터 시작하였으며 당대 활량들로는 한덕희님. 박재일님. 배영금님. 서정길님. 노영인님. 장상근님. 오재삼님. 금금조님(우리국악의 명창) 외 기생 여궁사 4~5명 지금 함양읍 백연리 함양고등학교자리에 사장이 있었고 당시에 명궁으로는 한덕회님. 배영금님. 오재삼씨가 이름을 날렸다. 오재삼씨는 1980년대 까지도 경남도내에서도 명인으로 활약했다. 1945~50년까지도 활터가 유지되다가 6.25 동란으로 일시중단 되었다. 1960년대부터 함양읍 하림에 간단하게 사장을 마련하여 2세대 궁사들이 등장 당시에 오재삼씨 지도로 김윤근. 장석희. 임학래. 김명섭. 박종수 등이 참여 하였으며 함양읍 상림과 병곡 등구정으로 임시 사장을 만들어 김종봉. 김재도. 양재덕 등이 참여(도체에 참가) 축구(상림운동장 초기) 함양의 축구는 1930년부터 당시 함양에 목공예 학교가 설립되어 평양사람으로 김씨 최씨 두 분이 선생으로 오셨는데 축구실력이 아주 뛰어났던 분들이라 상림숲속에 좋은 운동장도 만들고 축구를 시작하여 축구실력이 영호남 각지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축구 발전에 후원하신 어른들로는 함양양조장 노영인씨. 양복점을 하시던 신피씨. 구장터에 하종식씨등이 매우 헌신하셨다고 한다. 1세대 함양 축구 대표 선수들로는(1950년까지) 전진옥. 정정현(안의). 강종희(대학교수). 고진옥. 하준수. 하갑수. 전재옥(함고교장). 유순승(씨름장사). 홍계선. 하재칠. 고중옥. 최행우씨 등이 기억이 납니다. 2세대 함양축구의 중흥기(1950년 이후) 우두영. 고경옥. 김재도. 전위수. 임영신. 김병순. 하영. 하재호. 김종철. 강상태. 김태윤. 김정구. 이기수. 정점영. 박윤주 등 특기할 것은 1962년 5.16기념으로 부산에서 경상남도 도민체육대회가 개최(도지사 양찬우 소장 대회장) 되어 우리 함양에서는 축구 단일팀이 참가하여 3일간의 혈전 끝에 결승에서 울산시와 싸워서 어두워질 때까지 승부가 나지 않아 공동 우승을 하였다. 당시에는 TV도 없고 라디오 중계 밖에 없었는데 결승전 실황을 그 시간 동안 계속 함양 노란셔츠 8번 10번을 연호하면서 관중석에서도 함양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현상이 일어났었다. 본 필자가 총무로 재정을 담당하고 감독 및 코치로 우두영 선수가 겸무하는 역사를 이뤘다. 특히 함양 2세대 3세대 축구발전에 기여하신 고 우두영씨의 업적을 잊을 수가 없다. 정구 1935년경부터 함양읍 백연리에 일본사람들이 구주제대 임업시험장을 설치하면서 정구장을 만들어 정구가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 중에 유명한 일화가 있어 소개한다. 정구장 근처에 젊은 촌부 내외가 살았는데 정구장 청소도 하고 심부름꾼도 하면서 짬짬이 정구도 배우고 해서 왜정 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야채 장사를 하면서 일본 동경에 있는 모 은행 정구장에 야채 장사 차 갔다가 정구장 청소를 해주는 경우가 생겨 인연이 맺어지어 정구 실력이 뛰어남을 알고 그분들의 호의로 그 은행에 정구 지도자로 선수생활을 하여 전 일본 정구대회에서 우승까지 하였다는 야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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