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양 오랜만에 불러보는 함양이군요. 언젠가 저는 목과 어깨에 통증이 오고 급기야 팔을 어깨위로 올릴 수도. 세수조차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에 휩싸인 적이 있었습니다. 반신불수의 처지가 온 것은 아닐까? 드디어 노년의 대열에 들어섰구나. 풍이 왔구나 하여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이른 바 오십견(五十肩). 풍(風). 견주염이라는통증이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내가 놀란 것은 물리치료실의 풍경이었지요. 대개 1층은 진료실. 2층은 물리치료실이었는데 그 규모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칸막이 형태로 20∼30십여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고 갖가지 물리치료기구가 곳곳에 놓여 치료가 진행되었습니다. 아침부터 사람들로 가득 차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은 빈자리가 나지 않아 기다림에 지친 나는 아예 포기하고 다른 병원을 찾아 다녀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다 만원이었습니다. 모두가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였습니다. 이처럼 환자가 많다니 어찌된 일일까요? 나는 한 두 시간씩 진행되는 치료를 매일 하면서 함양 물리치료의 실태를 잘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아버님. 어머님인 나이 드신 어르신들께서는 60. 70. 80평생 밭에서 고된 농사일만 하고 살아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온몸이 쇠라도 견디어 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오직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 평생 노동에 살과 뼈가 다 달아 없어질 때까지 몸을 던졌던 것입니다. 몸이 오래 전 망가져 삭신이 쑤셔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농어촌 의료복지혜택이 잘 주어져 하루 2.000원이면 2시간 정도 따뜻한 침대에서 온몸 마사지를 받으며 편안히 누워 잠도 잘 수 있으니 천국이 따로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어르신들은 눈만 뜨면 물리치료실을 찾아찾아 오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물리치료실은 어르신들의 휴게소이자 인생상담소이자 정보통 시장이자 스트레스 해소장이자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히 쉬고 잠을 잘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었으며 피로회복실이었습니다. 옆에 누운 아무 할머니 할아버지와도 개의치 않고 쉽게 말을 틉니다. "어디 사슈? 자식은 몇이나 뒀수? 그럼 거시기 댁이랑 일가네. 첫째 며늘년 땜에 속 터져 병나지 않았갔소. 어느 노인요양소가 좋다고 하요? 입맛 없는데 칼국수 하나 시켜 먹을까요" 젊은이 물리치료사는 어르신들의 인기 쨩 우상입니다. “우리 애인 할매요.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왔능가? 야들야들 허리. 아니면 펑퍼짐 엉덩이. 어디 만져 줄까? 내 오늘 부드럽게 잘 만져 줄기라” “애고. 썩을 놈! 주둥이만 살아갔고. 셋째 아들만 한 놈이 어른을 놀려? 근데 젊은이 정말 장가갔는가? 내 막내 딸년이 잘 생겼는디 아직 시집을 못 갔어. 어디 한번 만나보지 안컸어?” 아프지 않은 곳 없이 낑낑거리며 온 어르신들의 유쾌한 장터가 펼쳐지는 곳. 바로 이 물리치료실이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복지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곳을 다니며 제발 우리 함양의 어르신들이 이젠 그만 일을 하고 빈둥빈둥 놀며 인생을 즐기라고 간곡히 애원하고 싶습니다. 제발 빈둥빈둥거리세요. 얼마 전 함양에 재미난 다방. 아니 커피집. 아니 혓바닥에 버터 칠하는 말로 카페라고 하는 재미난 찻집이 하나 생겨났습니다. <카페 빈둥>입니다. 교육청 현대자동차 앞쪽에서 한주아파트 쪽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 있습니다. 내 귀에 이러한 소문 하나가 접수되었습니다. 번화가도 아닌 종에 맞지 않는 위치에 작고 허름한 집에 돈 들여 멋지게 꾸미지도 않았는데 왠지 도시의 커피집 같은 인텔리적 이태리안적 내이처적 유로풍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 있는 집이 생겨 차 마시러 가는 선남선녀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여주인이 명문 S대를 나왔다. 아주 잘생긴 유럽의 외국 젊은이가 바리스타다. 젊은애들이 바글바글하다. 이 정도면 함양 명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니 이곳 함양에 뭐하러 S대 나온 젊은 여자가 와서 귀농도 아니고 커피점을 한단 말이냐? 더욱이 미국 사람도 아닌 유럽 사람이 대도시 서울도 아니고 작은 읍 함양에 친구 따라 같이 왔다냐? 나의 궁금한 발이 가만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슬슬 그 집을 찾아가 문을 열고 기웃거렸습니다. <카페 빈둥>. 이름부터가 얼마나 매혹적인 이름입니까. <빈둥 -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놀기만 하다.> 내 평생의 소원이요. 내 평생의 목적이었습니다. 빈둥빈둥빈둥빈둥. 아침먹고 빈둥 점심먹고 빈둥 저녁먹고 빈둥 낮잠 자면서 빈둥 졸면서 빈둥 책보면서 빈둥 과자 먹으면서 빈둥 커피 마시면서 빈둥 티비보면서 빈둥 소파에서 빈둥 배 깔고 엎드려 빈둥 천장보면서 빈둥 발가락이나 코딱지 쑤시면서 빈둥 심심해서 빈둥 재미없어서 빈둥 아무도 없어서 빈둥 외로워서 빈둥 지겨워서 빈둥 애기 없어 빈둥 마누라 없어 빈둥 개도 빈둥 나도 빈둥 자나깨나 빈둥 깨나자나 빈둥 빈둥빈둥빈둥빈둥. 과연 <카페 빈둥>은 빈둥답게 모든 사물이 무질서하게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메뉴판도 골판지에 썼고. 글씨도 연필 글씨로 삐뚤빼뚤. 탁자도 의자도 이런 것 저런 것 통일된 것이 없었습니다. 벽에 놓인 책꽂이에 여행 책이며 사색적 책이며 여러 가지 인문학 책이 있었지만 거꾸로 꽂힌 책. 쓰러진 책. 엎어진 책. 제멋대로 놓인 정신들이 쓰러지고 나자빠져 있었습니다. 전기선도 천장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져 나갔고 민 시멘트 벽과 기둥 또는 천장에 매달린 백열전등이며 조명등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인테리어를 조금 하긴 한 것 같은데 한 건지 안 한 건지. 여기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도 뭐 하나 체면이나 이웃에 관심이 없이 제멋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기를 유모차에 싣고 들어와 옆에 놔두고 커피 마시는 손님도 보았습니다. 여주인장이나 주방에 있는 바리스타나 손님이 와도 그만 가도 그만인 이곳. <카페 빈둥>은 그야말로 사람이나 사물 모두가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빈둥거리니 종업원이 빈둥거리고 종업원이 빈둥거리니 손님이 빈둥거리고 사람이 빈둥거리니 사물이 빈둥거립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산만하기 이를 데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산만하고 빈둥거리는 불일치의 분위기가 이상야릇하게 안정을 주고 자유로움을 주고 흩어진 사물에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게 하고 여유가 생기고 느긋함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볶고 갈고 끓인 구수한 커피향이 코끝을 간질이더니 비틀즈 또는 지중해풍의 음악과 옆자리의 수다소리가 함께 섞여 귀 끝이 간질거리더니 급기야 내 오감이 풀어지며 빈둥빈둥 빈둥거리기 시작했고 느긋하게 나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장소에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졸고 있을 수 있다니 세상이 변한 건지 내가 변한 건지 참 알 수 없었습니다. <카페 빈둥>은 완전한 불일치의 일치였습니다. 흩어짐 속의 자유였습니다. 부자연속의 자연이었습니다. 빈둥 속의 여유로움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독일어라고 쓴 사전 끝에 <빈둥Bindung: 매기. 묶기 결합. 접합 제본 매는[묶는] 법.>의 뜻이 하나 더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빈둥은 제멋대로 놓아두기도 하고 또 다른 묶기 결합을 숨겨 두기도 하고 있었구나. 나는 빈둥을 통하여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빈둥거리기를 좋아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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