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보23편 아이들의 보물창고 문방구를 가다 없는 게 없다. 불량식품이라고 말하는 과자들부터 장난감. 문구류까지. 어린이들을 위한 모든 것을 갖춘 만물상이자 백화점이다. 어린 시절 문방구에 가면 모든 것이 신기하고 문방구 사장님이 부모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50원만 있어도 신이 나서 달려가고. 간혹 천원이라도 생기는 날이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는 스타가 되기도 했다. 학기 초가 되면 문방구는 가장 붐볐다. 공책과 스케치북은 물론 표준전과와 참고서. 준비물 등을 사기 위해 전교생이 모두 찾았다. 미술 시간에 사용하는 찰흙이며 서예용품에서 체육시간에 사용하는 곤봉 등 없는 게 없는 만물상이었다. 신기하게도 문방구 사장님은 그 많은 학생들이 요구하는 물건들을 모두 가지고 계셨다. 조그만 가게에 어떻게 학생들이 요구하는 물건들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준비해 놓은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먹을거리도 다양했다. 설탕과 착색제로 만든 각종 군것질거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아이들의 입맛을 자극했다. 특히 뽑기를 할 때는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다. 50원으로 종이로 만든 표를 뽑는 뽑기는 1등 상품이 몸 만한 대형 `황금 붕어`였지만 1등에 당첨되기란 로또 당첨보다 어려웠다. 아이들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춰진 문방구지만 우리들 뇌리 속에서는 점점 잊혀져갔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형 프랜차이즈 문방구나 대형마트에 밀려 자리를 잃었다. 함양읍에도 현재 5∼6개의 문방구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 읍내 중앙시장 쪽에 있는 `고바우 문구사`다. 올해로 `고바우 문구사`를 31년째 지키고 있는 김덕수(59) 사장님. "예전에는 학생들이 수업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무조건 이곳을 들렸다. 작은 가게지만 빼곡하게 학생들이 들어찼었다"며 옛 생각이 나는지 쓸쓸한 표정이 깃들었다. 30여년의 세월만큼이나 문방구도 낡았다. 그 허름함 속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기란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진 나무 진열장은 곳곳에 덧댄 흔적이 역력했다. 아이들도 지나다니기 불편할 정도로 좁은 통로에는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문방구에는 일명 `불량식품`이라고 불리는 과자들이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었다. 마트 등에서 판매가 되지 않는 것들을 `불량식품`이라고 누명을 씌우고 그렇게 불릴 뿐 건강에는 해로운 것들이 아니다. 색색의 옷을 입은 다양한 과자들과 어릴 적 그렇게 갖고 싶었던 조립 로봇. 여학생들의 자랑인 바비인형까지 눈에 띄었다. 흔히 생각하는 학교 앞 문방구가 아닌 것에 대해 묻자 "오히려 학교 앞 보다 장사가 잘된다. 학교 앞은 등하굣길에나 학생들이 붐비지만 주택가 근처는 항상 자주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덕수 사장님은 인근의 인당마을에서 농사도 지으면서 부업으로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다. 31년 전 동생이 하던 가게를 물려받은 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에는 장사가 안 된다. 그냥 농사가 주업이고 부업으로 문방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창 새 학기를 앞두고 요즘 경기는 어떠냐고 묻자 "장사가 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는 것 아니냐. 예전에는 신학기가 시작되면 문방구가 청소를 한 것처럼 모든 물건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기도 했다"며 회상했다. 오래된 문방구인 만큼 옛 기억을 가진 이들도 간혹 찾는다고 한다. 문방구 물건을 훔쳐갔던 꼬맹이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 찾아와 "그때는 죄송했습니다"라며 인사를 하기도 한다. 수많은 아이들이 찾는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치는 아이를 귀신같이 잡아낸다. 비결을 묻자 "가게에 들어올 때부터 훔치러 오는 아이는 뭔가 다르다. 이런 장사를 오래하다 보면 무슨 행동을 할 것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예전 한날은 출근하니 창문이 열려있고 물건들이 많이 없어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특별한 장난감을 사기 위해 외지인들도 찾는다. 오래된 연륜만큼이나 오래된 숨은 보석 같은 장난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상품을 팔 때면 그때 그 가격표대로 판매를 하다 보니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30여년을 이어온 ‘고바우 문방구’도 조만간 문을 닫을 예정이다. 학교 앞 문방구들이 경영난 등을 이유로 문을 닫는 것은 전국적인 추세이다. 학생들은 대형마트 등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필요한 준비물은 학교에서 대부분 준비하다 보니 문방구가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김덕수 사장은 “기존에 있는 문방구는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장사를 하지만 새로 문방구를 차리는 건 ‘헛일’이다”고 말했다. 대형 마트에 밀려난 ‘고바우 문방구’. 문방구가 사라지기 전에 이곳을 아는 이들이나 어린 시절 이곳에서 물건을 훔쳤던 이들은 한번쯤 이곳을 찾아보자. 그리고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과 함께 그때의 기억을 되새겨 보면 어떨까. 문방구에는 오늘도 아이들이 불량식품을 사먹고 뽑기를 한다. 그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여전히 문방구의 추억을 쫓으며 그때를 회상할 것이다. <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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