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에 오랜만에 부모형제가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어깨가 작아져 가는 부모님께 새해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인사를 드렸다. 어느 덧 청년으로 성장해 있는 조카들에게 덕담을 건네며 이 땅의 청년이 희망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기를 소망한다. 사람은 희망적 존재다. 희망없이 사람은 하루도 살 수 없다. 사람이 밥을 먹고살듯이 사람은 희망을 먹고산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 때에 죽음의 엄혹한 포로 수용소를 경험한 분이다. 그는 매일 죽음의 노역과 철조망 안에서 사망의 그늘 아래 있었다. 죽음의 수용소를 들어가면서 많은 이들에게는 일찍이 단테가 지옥 출입구에 적혀 있다는 ‘이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살 희망을 버릴지니...’라는 문구를 생각할 만큼 모든 수용자들은 거대한 절망 앞에 기가 눌리며 한사람한사람 희망의 끈을 놓고 죽어갔다. 빅터 프랭클도 예외는 아니였다. ‘내게 이제 무슨 살아날 소망이 있겠는가? 나도 언젠가는 저 가스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처럼. 공중에 연기가 되어 사라질 거라는 공포에 짓눌리며 시한부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쪽지를 발견한다. 이전에 누군가가 입었던 수용자의 옷을 갈아입으면서 그 옷 주머니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그 옷 주머니에 들어있던 쪽지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는 성서 신명기 6장의 말씀이었다. 그는 이 말씀 속에서 세상의 희망이 아니라. 하늘의 희망을 찾았다. 아무리 나치 요원들이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 해도. 나의 시계를 빼앗고. 나의 아끼던 연구논문을 빼앗고. 내 아내를 빼앗고. 내 부모를 빼앗고. 내 목숨을 빼앗는다 해도. 내 안에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은 빼앗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안에 세상을 포기할 수 없고. 희망을 갖는 의지와 용기까지는 그들이 빼앗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오히려 내 영혼을 창조하시고. 오늘까지도 생명을 주신 분으로부터 큰 희망을 얻고. 결국은 살아남아 인간의 정신의학과 심리학에 큰 흔적을 남긴다. 올해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 희망은 경제적 윤택함으로부터 오는 희망이 아닐 것이다. 그 희망은 나로호를 우리 기술로 발사했다고 오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 희망은 바로 그 분을 사랑함으로부터 오는 희망일 것이다. 진실한 사랑은 무엇이든지 넘어 설 수 있는 의지와 힘을 가져다 준다. 진실한 사랑만이 우리를 삶에서 절망하지 않게 한다. 그리고 그 진실한 사랑은 오직 위로부터 주어진다. 우리 사람은 자기 한계를 인식하며. 온전히 사랑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사랑할 수 있는 힘.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구할 때에 우리는 또한 희망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