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삼일절이 돌아온다. 배달민족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여 일어선 1919년 3월1일의 만세 운동이 있은 지 어느덧 아흔 네 번의 해가 바뀌었다. 해마다 이때만 되면 우리들은 3.1독립운동을 회상하고 그때의 선열들을 추모하며 거룩한 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자고 다짐한다. 이제 아흔 네 번째의 삼일절을 맞이하여 진정한 삼일정신이 무엇인가를 되새겨 보면서 잊혀져가는 삼일정신을 어떻게 하면 우리 온 겨레의 가슴속에 다시 확고하게 심어서 이어 갈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삼일절을 민족의 가장 큰 경축일로 삼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 반만년 우리 민족사에서 온 민족이 한 덩어리가 되어 민족 독립을 위해 일어 선 때는 삼일운동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오로지 민족의 자주독립만을 갈구하며 자기 한 몸 희생하면서 일어선 예는 우리 민족사의 어디에도 없다. 이 운동이 있었기에 우리 한민족은 한 덩어리로 뭉칠 수가 있었고 이 운동이 있었기에 우리 겨레 모두는 민족의 자존과 독립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깨칠 수가 있었다. 봉건 왕조의 압박 아래 신음하면서 살아 온 우리 배달민족은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민족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고 나라의 자주 독립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비록 바라는 자주 독립의 쟁취에는 실패했지만 자주 독립을 하여야 한다는 깊은 신념을 우리 온 겨레의 가슴속에 심어 주었기에 상해 임시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고 국내외에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활동할 수 있었으며 그 덕으로 해방을 맞이하였고 우리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숭고한 정신도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겨레의 가슴속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삼일절을 맞이하여 우리 국민들이 가져야할 자세를 생각해 보자. 우리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 번 마음 속 깊이 새겨서 이 나라 이 민족의 발전을 위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고 아울러 그 마음을 행동으로 나타내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매년 삼일절은 어김없이 돌아오지만 우리 고장에는 삼일절을 경축하는 뜻으로 모여서 간단하게나마 식이라도 올리는 곳이 없다. TV를 통해 서울에서 거행되는 경축식 실황을 시청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군민을 대표하는 관청인 군청에서도.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길러주는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그저 선열들 덕에 하루를 푹 쉬는 것으로 인식하고 공휴일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을 뿐이다. 태극기라도 게양한다면 좋으련만 관공서 이외에 태극기가 걸린 집은 열에 한 집이나 될는지.... 아파트 단지를 지나치면서 바라보면 그 많은 창문에 태극기가 걸린 집은 그저 한두 집에 불과하다. 상림으로 가 보자. 그 곳에는 우리 고장 선열들이 삼일 독립운동에 동참하여 피 흘리며 항쟁했던 거룩한 행적을 길이 후손들에게 남기기 위해 함양읍 만세기념비와 대한의사 하승현 사적비. 대한의사 김한익 기념비가 한 곳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그런데 참으로 한심한 일은 그 기념비에 사람들이 가까이 갈 수가 없도록 행정당국에서 동아줄을 걸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멀리 지나치면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그 비석에 어떤 사연이 적혀 있는지 읽어보려면 못 들어가게 얽어 놓은 줄을 넘어서 들어가야 하니 결국 법규를 어겨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안내판이라도 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볼 수 있도록 편리를 제공하지는 못할망정 못 들어가게 막아놓았다니... 삼일절을 맞이하여 선열들의 넋이 담겨 있는 그 비석 앞에 꽃이라도 한 송이 바치고 싶어도 들어 갈 수가 없으니 이 얼마니 안타까운 일인가. 천연기념물인 상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상림을 관리하는 관계 인사들이 선열들의 거룩한 정신을 조금이나마 생각하였다면 이런 식으로 대접하지 않고 경축일을 맞아 꽃이라도 바치는 정성을 보였으리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석불에는 안내판도 세워놓았고 참배가 가능하도록 널찍하게 공간을 마련하여 놓았으니 대조가 되어 한심하다 못해 분노마저 느끼게 한다. 온 군민이 읽기를 바라는 뜻에서 함양읍 만세 기념비에 새겨진 글을 여기에 소개하면서 글을 맺는다.  그 날의 함성 일천 구백 십 구년 삼월 이십 팔일 함양읍내 장터에서 외친 대한 독립 만세의 함성은 대관림과 한들을 누비며 맴돌다가 왜경의 총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빼앗긴 주권과 글과 노래와 풍습을 되찾고 자주 독립을 쟁취코자 분연히 일어선 기미독립만세에 뒤따라 이 고장에서도 총검에 맞서 귀중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만세의 대열에 뛰어 들었던 민중이 천명을 넘어섰다는 일은 우리의 자랑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 날의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선인의 높은 뜻을 영원히 지키고 그 함성이 대관림과 한들에서 우렁차게 메아리 되어 번영과 통일로 치닫는 활력소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군민의 정성을 담아 위천변 숲 안에 큰 돌 하나를 세운다. 1985. 12. 함양 군수 필자 : 전 수동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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