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지난 7일 설은 앞둔 함양 중앙시장. 백전면 서씨 할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몇 가지 농산물을 팔고 있다. "요즘 대목인데 장사가 좀 어떠세요?" “대목은 무슨 얼어죽을” 취재기자의 물음에 설을 앞둔 함양 중앙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다. 예전엔 설이나 추석을 앞둔 장날은 대목장이라 일컬으며 사람들로 북적북적 했다. 그러나 옛 재래시장의 모습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요즘 시장풍경. 비단 함양만의 모습은 아니지만 설을 앞둔 지난 2월7일 재래시장은 썰렁함 그 자체다. 추운 날씨 탓도 있겠지만 여느 장날과 별반 다를 바 없다. 200여 개가 넘었던 점포는 이젠 고작 40∼50개. 그나마 문을 연 점포들도 ‘울며 겨자 먹기’다. 점포의 숫자만큼이나 늘어선 노점상도 문제지만 대형할인마트에 떠밀린 상인들의 어려운 사정은 미뤄 짐작하고도 남았다. 이처럼 재래시장이 장사가 안 되는 원인은 장기 불황이라는 외부 환경과 함께 수년 전부터 속속 들어서기 시작한 대형 할인마트가 함양읍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을 형성한 탓이다. 무엇이든 다 있고 쇼핑하기도 편리한 대형마트에 비해 재래시장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렇다고 시장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에서 손을 놓은 것도 아니다. 현대화 시설은 물론 재래시장상품권을 동원해 고객몰이에 나서고 있으나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젊은 소비층을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자체가 지역상권 보호를 외치는 이유는 재래시장 영세상인들의 생계기반이 곧 서민들의 삶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으레 대형 할인점이나 인근 도시의 백화점 등을 습관처럼 떠올린다. 특히 요즘 신세대는 컴퓨터에 손만 올려놓으면 원하는 물건이 하루 이틀이면 집에 도착하는 홈쇼핑을 선호한다. 이처럼 대부분 사람들의 삶에서 빠져버린 재래시장. 자 이제 나부터 재래시장을 한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썰렁하긴 하지만 아직도 여기저기 에너지가 충만하다. "어이 총각. 총각" 할머니의 목소리에 발길을 멈췄다. 말린 산나물. 고사리. 대추. 밤. 무말랭이. 호박나물 등 대여섯 가지의 물건을 늘어놓은 할머니는 오전11시가 다 되가는 지금 이 시각까지 아직 개시를 못했다며 하나 팔아 달란다. "할머니 그럼 이야기 조금 나누면요" "어디서 나왔는감? 군에서 나왔는가배?" 백전면에서 왔다는 할머니는 시장에 장사하신 지가 30여년이 다됐다. 옛날에는 자신도 물건을 때다가 곳곳을 다니며 크게 했는데 지금은 그냥 심심해서 장날만 시장에 나온다. 팔순을 넘긴 할머니는 "호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손주 녀석들 용돈이라도 주지. 집에 있으면 병 나. 여기라도 나와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지 않겠나"라며 웃는다. 카메라 셔터를 눌리자 객지에 나간 아들이 알면 안된다며 손사래 치면서도 할머니는 자식자랑에 여념이 없다. "내가 젊어서 장사해 자식들을 고등학교는 진주로. 대학은 서울로 보냈다"며 즐거워하신다. 장바닥에 줄줄이 앉아 채소와 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힘들고 거친 세상살이의 참된 의미를 떠올릴 수 있진 않을까? 물건을 흥정하며 내뱉는 구수한 말에 잠시나마 삶의 활기를 찾는다. 시시콜콜 시장 아주머니의 삶과 찌든 일상이야기까지 곁들여 삶을 흥정할 수 있는 곳. 사람 사는 맛까지도 흥정할 수 있는 이곳이 바로 재래시장이다. 그렇다. 시장 아주머니가 전해주는 묻지도 않은 일상사. 그리고 덤으로 주는 운수에 마음이 훈훈해져 빙그레 웃음 지어지는 재래시장. 우리는 대형할인점이나 백화점에서는 살 수 없는 사람 사는 맛과 냄새까지 살 수 있는 것이다. 보다 문화적으로 말하자면 철저한 시장경제논리 속에 살아가야 하는 우리지만 재래시장에서는 물건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우리의 삶과 문화까지 흥정하고 싼값에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명절을 앞두고 연례행사처럼 재래시장 활성화를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함양군에 이름을 올리고 사는 이라면 꼭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한 달에 한번. 아이 손을 잡고 장을 보러 함양 중앙시장을 들르길 기대한다.   <하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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