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가 밝은 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나 설날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시작을 만나지만 음력 첫날인 설날은 어릴 때부터 한 살 더 먹는다는 경건한 설렘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30여년 전 설날 풍경은 참 따뜻했습니다. 어른들은 고향을 찾을 자식과 손님을 맞이하는 반가움으로 분주히 집 단장을 했습니다. 연례 행사처럼 창호지와 문풍지를 사다가 찬바람을 막고 벽지를 골라 새로 바르고. 여러 번 장날 나들이를 하여 음식 장만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덩달아 바빠서 일년에 몇 번 안가는 목욕탕을 다녀오고. 이발을 하고. 설빔을 고르느라 기쁜 분주함이 가득 했습니다. 단맛이 귀했던 시절이라 성가시다는 타박을 들어가며 얻어먹던 곶감이나 한과 조각의 달콤함도 특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른 아침부터 한복을 차려입고 삼삼오오 동네를 누비며 세배를 다니면 이웃 어른들은 덕담과 함께 떡국이나 세뱃돈을 나눠주시곤 하셨습니다.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는데 떡국을 이렇게 여러 번 먹어서 나이를 많이 먹은 아이가 되면 어쩌나?` 하고 천진난만한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넉넉지 못한 시절이었지만 모처럼 주머니를 볼록하게 만들어 주던 세뱃돈은 아이들에게는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흥겹고 풍성함 속에 기대감으로 손꼽아 기다리던 명절이었지요. 그 시설에 비하면 먹거나 생활수준이 높아진 요즘이지만 명절 재미는 오히려 이전만 못한 듯 합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정겨운 기대감보다 당장 치솟는 재수용품 물가를 걱정해야 하고 뉴스에는 `올 명절 보너스 지급 제자리`‘서민들의 가벼워진 지갑`‘귀향길 교통대란` 같은 반갑잖은 기사들이 빠지지 않습니다. 나 역시 감당해야 할 며느리 노릇이라는 중압감에 명절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오죽하면 `명절 증후군`이란 신조어가 생겼을까요. 그러나 퇴근 무렵 시어머니와의 통화에 많은 생각과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평생 가족사랑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당신은 지난 폭설에 낙상으로 다쳐서 성치 않은 손목과 감기몸살로 고생하시는 와중에도 한 자리에 모일 자식 생각뿐이셨습니다. 두부와 메밀묵을 만들어 놓으시고. 떡국과 함께 내놓을 무김치를 담그고 손주들 먹일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혼자서 준비하시면서도 저에게 당부하신 말씀은 오로지 안전한 귀향과 맏며느리로서의 노고에 대한 걱정뿐이셨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수구초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우는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데 사람들이야말로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녹록치 않은 세상살이에 돌아갈 고향이 있고 기다리는 부모님이 계시는 우리는 참 행복합니다. 더러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이번 설날에는 경제논리가 아닌 공존을 위한 덕목에 대해 생각해보는 따뜻한 시간 만드시길 빌어봅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