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아침 날씨가 엄청나게 추웠다. 올 겨울 들어서 가장 춥다고 방송에서는 떠들고 서울은 영하 15∼16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왔다고 시민들의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물론 우리 함양도 서울 못지않게 추워서 모든 게 꽁꽁 얼어붙었다.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에다가 흐린 날씨에 눈발이 날리며 바람까지 부니 피부로 느끼는 추위는 훨씬 심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날씨를 보고 걱정에 휩싸였다. 오늘이 수요일이어서 한글 교실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추위에 학생들이 어떻게 온다는 말인가. 추위도 추위려니와 지난달 28일에 내린 폭설이 아직도 녹지 않고 군데군데 쌓여있고 길바닥은 꽁꽁 얼어붙어 미끄럽기가 한이 없는데 늙은 할머니들이 오다가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하는 걱정에 불안하기만 하였다. 학생들 집에 전화라도 걸어서 오늘은 너무 추워서 오기가 힘들 터이니 나오지 말라고 말할까하고 몇 번이나 마음먹었다가 그만 두었다. 어린이들도 아니고 인생을 많이 산 분들이니 자기 처신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는 학생은 오고 오지 못하는 학생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조금 일찍 읍사무소로 나갔다. 그런데 아침 내내 내가 한 걱정은 기우에 지내지 않았다. 내가 공부 시작 시간보다 반시간이나 일찍 교실에 도착하였는데도 벌써 두 학생이 와 있고 계속해서 학생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모두들 두꺼운 옷으로 방한 장치를 야무지게 하고는 추위도 잊은 듯 웃으면서 교실에 들어선다. 옷에 묻은 눈을 털고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면서 자기 자리를 찾아 앉는다. 나는 그들이 아무 탈 없이 교실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반가워서 이 추위에 어떻게 왔느냐고 묻자 그들은 길이 조금 미끄러워도 그냥 올만 하더라면서 이런 추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공부 시간이 될 때까지는 10여명이 출석했고 조금 늦게 온 학생들도 있었지만 예니 때 보다 오히려 더 많은 학생들이 나와서 자리를 메웠다. 이 강추위에 그 미끄러운 길을 늙은 몸을 이끌고 이 자리에 나오다니 참으로 장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평생토록 배움에 얼마나 목말랐으면 칠순 노구를 이끌고 이런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이 자리에 나와서 앉았단 말인가! 우리 한글 교실은 방학이 없다. 읍 자치센터의 다른 파트들은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에는 방학을 하여 혹한과 폭설을 피해가지만 우리 한글반 학생들은 더위나 추위가 심할 때일수록 출석하는 학생 수가 더 많다. 농번기에는 농사일에 매달리다보면 공부하러 나올 여가가 없고 따뜻한 날에는 가사에 바쁘기만 한 그들인지라 손이 모자라 쩔쩔매는 식구들에게 공부하러 간다는 말을 어찌 하겠는가. 그러니 저들은 추위나 더위가 심할 때일수록 가정일은 할 수 없으니 식구들 눈치 안보고 마음놓고 나와서 글을 배울 수 있단다. 이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이니 배운다고 해도 배운 것을 활용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건가. 그러나 저들은 열심히 배운다. 밖의 추위는 아랑곳 않고 읽고 쓰고 또 읽고 쓴다. 읍장의 따뜻한 배려로 교실 안은 공부하기에 알맞도록 포근해서 눈길을 헤치며 오느라 언 몸을 녹여준다. 오늘날에는 평생 교육이라고 하여 사람들은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배우면서 살아간다지만 우리 할머니 학생들의 경우는 정말로 특이하다.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온 한을 풀려고 작심이나 한 것처럼 열심히 배운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돋보기를 쓰고 글을 쓰는 할머니. 허리가 굽어 똑바로 앉지도 못하는 할머니. 머리가 하얗게 세어 검은머리는 찾아 볼 수도 없는 할머니. 지나온 어려운 삶이 얼굴에 그대로 배여 있는 주름투성이 할머니. 그들은 옆도 돌아보지 않고 주어진 교재 읽기에 여념이 없어 교실은 정숙하기만 하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도 춥지만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할머니 학생들은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출석을 한다. 멀리 백전이나 안의. 휴천에서 버스를 타고 출석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들도 폭설로 길이 막혀서 버스가 다니지 않는 한 빠지지 않고 출석을 한다. 나는 이들 할머니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을 보고 과연 배움에는 나이도 없고 추위도 없구나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였다. 그렇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손자한테서도 배운다고 하지 않았는가! 배우겠다는 열정 앞에는 나이도 추위도 더위도 당하지 못한다. 이들의 배움의 열정이 식지 않는 한 나는 온 힘을 다해 가르쳐서 글 모르고 살아온 저들 평생의 한을 풀어 주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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