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읍에는 보물이 있다. 너무나 커서 한번 보면 깜짝 놀랄 정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큰 보물을 알고 있으면서도 보물이 있다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내가 보물을 알게 된 것은 삼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한참 지난 후였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 무렵. 우연히 함양중학교 앞을 지나가다 ‘국가지정보물 제376호 석조여래좌상’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무슨 돌부처가 깊은 산 속도 아니고 아이들 소리로 시끌벅적한 학교 교정에 있단 말인가.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석조여래를 보기 위해 중학교 정문을 넘었다. 야트막한 오르막을 올라 설레는 가슴을 안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시간이 정지해 버리고 등줄기로 한 차례의 서늘함이 흘렀다. 왈칵 달려드는 무서움으로 나는 뒤로 밀리며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몸 속을 흐르는 전율에 죄 지은 사람마냥 겁이 났다. 심장은 둥둥둥 큰북소리를 만들었다. 팔뚝에 좁쌀이 돋고 서늘한 기운도 느껴졌다. 교정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고함소리로 소란스러웠다. 텅 빈 하늘과 파란 은행잎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은행나무와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 그리고 잿빛의 거대한 돌부처. 그 돌부처가 바로 ‘국가지정 보물376호 석조여래좌상’이었다. 꺼멓게 밀려오는 어둠을 등지고 거대한 돌부처는 당당히 좌정 해 계셨다. 저절로 ‘와아’하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대좌 높이까지 포함하여 4m가량이 될 만큼 거대했다. 떠들썩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나의 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적요와 돌부처뿐이었다. 그때 어느 교실. 누군가가 피리를 연주하는지 들쑥날쑥한 음표들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엉터리 음률이 사위를 더욱 고즈넉하게 만들었다. 천천히 부처님을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갔다. 석조여래의 모습이 점점 커졌다. 나는 가볍게 합창을 올렸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드러난 자태는 상처투성이였다. 상호는 깨어져 일그러져 있었다. 항마촉지인이었을 오른손과 왼손은 누구를 위하여 보시를 하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목 부분 또한 커다란 보수의 흔적도 있었다. 연화좌대는 상석이 깨어져 있고 자세히 보아야만 연꽃무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닳고닳아 있었다. 비록 일그러진 상호와 잃어버린 수인과 깨져버린 어깨로 앉아 있지만 그 위용은 변함이 없었다. 석조여래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 그때부터 옛날 사람들은 여래 앞에서 절을 올리고 소원을 빌었다. 또한 죄를 지은 마음을 참회하며 눈물도 흘렸을 것이다. 수많은 세월 동안 중생의 소리를 들으며 아픔을 지켜봐 왔다. 그리하여 모든 중생의 아픔을 당신의 돌 더미 속으로 끌어 당겼는지도 모른다. 부처는 중생이 아프면 당신도 아프다고 한다. 석조여래는 중생의 고통을 바라보며 중병을 앓고 있는 모양새였다. 자비로 인해 생긴 병은 중생의 괴로움이 다하는 날 치료가 될 것이리라. 갑자기 바닥을 치는 주장자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청천벽력의 음성이 울렸다.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여래께서 이곳을 방문한 나에게 화두를 던지시는가 보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니 눈이 시었다. 왈칵 달려들었던 무서움은 아마도 부끄럼이었나 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서소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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