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아침 조(朝)에 태양 양(陽). 옛날 기법으로 만든 피순대가 별미다.  만인보16편 함양 맛의 원조 조양식당 피순대국밥  조미숙 # since 1951. 찌지찌익… 고물 라디오에서 ‘현인’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가 흘러나온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1952년 겨울. 함양공설시장 난전. 닭이 첫 홰를 치고 나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새벽이 푸르스름하게 시장 안으로 스며들어 오고 있다. 장돌뱅이들이 하나둘씩 부산하게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다. 그들이 당도한 곳은 난전 한 켠 장터국밥집(옥호는 하동집). “보소 지곡(面) 새댁. 오늘은 순대국밥 말고 국에 국시 좀 마이(많이) 풀어주소. 탁주도 꽉꽉 눌러 가지고. 어이 추버라. 어짜몬 좋노. 어젯밤에 마천 등구 이상식이 아부지 공비 대죽으로 찔러죽었다카데. 아이고 벌써 음석(음식)이 왔나. 자자 묵자. 왔다 맛 있는거. 새댁 국밥 맛 묵을라꼬 내가 장돌뱅이 안 하나. 리승만(전 대통령)이도 이 맛을 모를끼라. 먹거리 한 사발 더 주소” 장돌뱅이는 후루루 뚝배기 국물을 들이키며 국밥집 새댁에게 농을 한다. “전쟁터에 나간 서방 죽었는지 살았는지 깜깜 무소식이제. 내가 튼실한 총각 한 명 소개해주까?” 국밥 만드는 새댁. 서방은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청상과부 새댁(정순권). 시름도 이겨낼 겸 생계도 유지할 겸 전쟁통 1951년부터 함양시장 바닥에서 국밥장사를 하게 된다. “하동집 장터국밥? 별미 중 별미였지. 그 아줌씨 지금도 살아있나? 그 집 국밥. 참 맛이 깊었지. 가마솥에 사골을 푹 고아. 그 국물에 대파 씨래기 순대 내장 넣고 끓인 국밥 맛 지금도 안 잊어진다 마” “그 새댁 이승 버린 지 온젠데. 중풍 걸려 고만… 새댁 작은딸이. 저그 어무이 손맛 이어받아 지금 시장 길 건너에서 순대국밥집 안 하나. 오늘 점슴 그(곳) 가서 묵자” 함양 중앙시장 건너 조양식당. 인터넷 검색창에 ‘함양 맛의 원조’를 탁 치면 제일먼저 등장하는 별미집. 주요메뉴는 소머리국밥. 돼지국밥. 순대국밥. 암뽕수육. 소머리수육. 족발. 내장고기 비빔밥 등이다. 주인은 지곡 새댁 작은 딸 조미숙. 모친 손맛 그대로 이어받아 지리산 찾는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만점이다. ‘함양의 김태희’ 손맛 못 보면 평생 후회!  # 필자도 조양식당을 자주 찾는다. 필자. 함양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한지. 어언 3년째. 아침저녁식사 해결하느라 함양 거리 고망쥐처럼 들락날락하다 마침내 찾아낸 맛의 이찌빵(최고)! 홀 안에 탁자는 딱 두 개. 앉아서 먹는 탁자는 세 개. 장날이면 이빨 빠진 할매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그만큼 조양식당 고기가 연하다는 말씀! 소머리국밥 맛이 일품이다. 주재료는 소머리. 사골. 잡뼈. 대파(파뿌리). 생강 썬 것. 머리고기와 소 혀를 다른 식당 보다 더 많이 넣어 감칠맛을 더한다. “모친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예. 중풍으로… 저로 말할 것 같으몬 내 나이 여섯 살 때부터 어무이 식당에 진출. 설거지도 하고 어무이 잔일 도와주면서 국밥 만드는 법을 배운 무림고수다 이 말쌈입니다. 전쟁통에 서방 일가(잃어)뿌렸는데 웬 딸이 있느냐? 참말로 별 거 다 묻네. 개가 안 했심니커 개가 푸하하하. 원래 어무이 하동식당은 공설시장 안에 있었지요. 그라다 1985년 지금 이 자리로 옮겼는데예. 왜 식당 이름이 조양이냐? 당대 최고의 명리학자 모씨가 정해준 이름인데 조선일보 할 때 조(朝) 태양할 때 양(陽). 즉 다시 말해서 아침 햇살처럼 서기 어린 요리 맛을 만드는 집이라는 뜻이지요” -조양식당이 다른 집과 차별화 된 점이 있다면? “어무이는 모든 요리 맛. 조선간장으로 냈심더. 저도 그 전통을 이어받아 어무이 비법 그대로 하고 있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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