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명은 기억할 수 없지만 심하게 앓아누웠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어머니께서 된장으로 간을 한 아욱국죽을 끓여주셨는데 그 뜨거운 죽을 후후 불어 가면서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니 콧잔등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히고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져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살면서 지치고 힘이 들 때면 늘 어머니의 그 아욱국죽이 그립다. 목이 꽉 잠기고 콧물이 줄줄 흐르는 감기가 와서 끙끙 앓아 누워있을 때도 나는 늘 어머니의 그 아욱국죽이 그립고. 배가 아파도 머리가 아파도 그 어떤 상황이 와도 나는 늘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아욱국죽을 떠올리게 된다. 최근에 나는 휴일도 없이 무리하게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목이 잠기고 콧물이 흐르는 감기로 왔다. 이럴 때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속을 터뜨리면서도 나는 병원에 가기는커녕 약도 먹지 않고 끙끙 앓기만 한다. 그러면서 계속 주문을 외운다. ‘어머니가 된장 듬뿍 풀어 넣고 끓여주시는 아욱국죽 한 그릇만 먹으면 이런 감기쯤 뚝딱하고 떨어질 텐데......’ 하고. 식약동원(食藥東源)이니 약선(藥膳)이니 하는 거창한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나에게도 음식은 치유의 수단이 되고 있었나보다. 아욱국죽을 포함한 어머니의 음식은 화려하고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어느 사이 시나브로 지치고 피곤에 찌든 나의 영혼과 몸을 맑게 만드는 치유의 음식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곳곳에는 각기 다른 이름의 다양한 치유센 터나 그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프로그램이나 장소들이 세상사에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을 다스리거나 치유하는 목적을 가진. 많이 같고 아주 조금 다른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이고 장소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그런 곳에 가면 늘 건강에 좋다거나 특정한 질병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훌륭한 음식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많은 훌륭한 음식들이 사람들의 마음 한 자락까지도 치유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굶어서 몹시 배가 고픈 느낌을 허기(虛飢)라고 부른다. 배를 곯아서 생긴 물리적인 허기는 배를 채우고 나면 곧바로 없어지지만 친구와의 우정에 굶주리고 연인과의 사랑에 굶주리고 부모의 사랑에 굶주리고 진리에 굶주리고 시간에 굶주리는 등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虛氣)는 먹고 또 먹어도 늘 속이 빈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해가 바뀐다. 동시에 새로운 정권이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될 것이다. 세 정권에서 만나게 될 식생활관이나 식품정책이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우리나라의 식생활을 걱정하는 많은 식생활교육과 관계자들은 연말의 마지막 날까지도 모여 포럼이니 심포지엄이니 하면서 모여 2013년을 설계하고 걱정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올 한해 우리가 먹는 한 끼 한 끼의 식사들은 우리 모두에게 자연이 나눠주는 한 줌의 사랑과도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가정의 울타리를 넘고 세상 밖으로 나가 일하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절망들 앞에서 웬만한 통증쯤 거뜬히 이기게 하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에 이루고 싶은 작은 소망 하나 품어본다. “2013년에는 나의 음식이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짧지만 강한 휴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휴식을 마치고 난 사람들이 꽉 막혔던 뭔가가 다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