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다리던 위림초등학교를 가는날. 들뜬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나. 경빈. 민규와 셋이서만 버스를 타고 4시간을 가야하는 먼 곳이지만 7살 때부터 해외 배낭 여행을 자주 해본 경험이 있어서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졸다가 수다떨다기를 반복하니 풍경은 서울인데 공기부터 차원이 다른 것이 경남 함양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팍팍 느낄 수 있었다. 청정 공기를 맡으며 함양버스 터미널에 내리는데 어떤 양복을 입으신 대머리 할아버지께서 아는 척을 하셨다. 낯설어 뻘쭘거리는데 교장선생님이라고 하셔서 약간 놀랬다. 시골이라 그런지 약간 시골티가 나셨다. 그러나 엄청나게 친절하셨다. 교장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함양의 이곳저곳을 둘러본 뒤 일찍 숙소로 향했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그냥 잘 수 있을까? 우리는 시골 하늘에 맑은 정기를 받고 싶어서 마당으로 나와 하늘을 봤다. 서울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떠오르는 샛별 금성이 보였다. 신기했다. 일주일동안 여러 가지 체험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승마와 산삼캐기 그리고 착하고 순진한 친구들을 만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위림초등학교에 첫 등교하는 날! 학교가 서당같이 조용하고 친구들과 선생님들께서는 아주 예의 바른 말투와 행동을 해서 우리학교와 비교가 됐다. 본받을 점이다. 낯설어 하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웃으며 학교에 대해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친구들이 눈물나도록 다시 보고싶다. 화요일엔 함양승마클럽에서 승마체험을 했다. 우리가 탄 말은 청룡과 백두인데 아주 아담하니 7살.11살짜리 말이다. 부드럽고 늘씬한 말을 쓰다듬으며 말의 눈빛을 보았다. 촉촉하고 똘망한 것이 계속보고 있으니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따닥따닥’ 말 발굽소리를 들으며 청룡과 리듬을 맞추어 승마를 했다. 승마를 하는 동안 말의 모습을 자세하게 관찰해서 알아낸 것이 있다. 말의 눈은 360도 회전이 되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코너를 돌 때는 같은 방향의 발을 먼저 내미는 것이 꼭 사람과 같다는 점이다. 무척 신기했다. 또 청각이 뛰어나서 승마선생님께서 작은 신호음을 입으로 내시면 그 소리를 듣고 달리는 속도를 조절한다. 선생님께서 옆에 안계실 때 그 소리를 따라했더니 신기하게 똑같이 움직여서 나는 선생님 도움없이 달리는 승마를 할 수 있었고. 칭찬도 들었다. 덩치는 크지만 초식동물이라 사람에게 매우 친근하고. 순해서 학교에 타고 다니고 싶을 정도였다. 수요일에는 안의면 용추산삼농장에 산삼캐기 체험을 하러갔다. 비탈진 오르막 산을 오르고오르고 반복하여 도착한 산삼농장에서 인삼이 아닌 산삼을 캤다. 사포닌이 많은 산삼이라 그런지 캐는 순간 산의 모든 나무와 풀을 모아놓은 듯한 향이 확! 풍겼고 노릇거리는 몸통이 금빛으로 보였다. 이 쓴 것이 몸에 무척 좋다고 하기에 꼭꼭 씹어서 남김없이 몽땅 먹었다. 입안은 너무 써서 얼얼했지만 뇌에 좋은 산삼을 먹었으니 두뇌 회전이 빨라지는 것 같아 쓴맛도 금세 잊을 수 있었다. 귀한 것이기 때문에 험하고 높은 산에 꽁꽁 숨겨두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위림초등학교에서 매일 교장선생님과 체험을 다니며 하루하루가 무척 빨리 지나가서 서울에 갈 날이 다가오는 것이 조금은 싫었다. 하지만 가족과 학교가 조금은 그리웠다. 다음날은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와 긴장을 안고 자서 그런지 늦잠도 자지 않았고. 늦게 자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이곳 교장선생님께서는 공모교장 임기 기간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이뤄놓기 위해 추진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학교에 스키장을 만들어 스키캠프를 할 것이고. 운동장에 잔디를 깔아 놓을 것이고. 골프캠프와 수영교실도 개설하겠다고 하셨다. 추진력과 자신감이 강하신 게 남자로서 배울점이 많으신 분이시다. 엄마같으신 다연 도농교류 생활실장님. 되게 순수한 친구들. 외할아버지 같으신 교장 선생님. 이모같은 선생님들.... 내년에 또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마지막날 교장선생님과 다연 도농교류 생활실장님을 붙잡고 며칠 더 있게 해달라고 때를 썼다. 하지만 가족과 또 오면 되고. 교장선생님께서도 좀 쉬셔야 하기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고 남자답게 인사를 드리고 왔다. 지금도 그곳에 순수한 친구들의 향기가 느껴져서 가슴이 간질거린다. 그곳 친구들도 나처럼 학원을 다니지 않아 하교하고 나면 많은 시간을 스스로의 시간으로 보낸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곳에 있는 동안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가졌다. 지금도 거의 매일 저녁에 전화가 온다. 이유는 보고 싶어서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코끝이 찡하게 그립다. 하지만 방학이나 휴일이 되면 서로 원할 때마다 친구들을 우리집에 며칠씩 초대도 할 수 있도록 부모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괜찮다. 서울에 도착한 요즘엔 자고 일어나면 함양인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베인 상처가 평생 남는 것처럼 함양생활의 추억도 내 기억에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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