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 완도에서 배를 타고 다시 들어가는 조그만 섬 생일도에 인사를 간 것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겨울이었다. 하룻밤을 묵으면서 미역과 함께 김을 채취해서 말리고 상품으로 만드는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게 되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겨울 새벽의 바닷바람은 얼마나 찬지 차갑다 못해 오히려 얼굴에서 통증이 느껴질 만큼 따갑다. 하지만 김을 채취해 생산하는 어민들은 그런 통증 따위를 탓하면서 투정부릴 여유가 없다. 겨울의 하루해는 너무 짧기 때문이다. 새벽 세 시 쯤에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쪽배를 타고 김양식장으로 나간다. 김도 미역과 다르지 않아 고무장갑 등을 끼고는 미끄러워 채취할 수 없으므로 맨손으로 뜯어야 한다. 미역은 크기나 하지만 김은 뜯어도 뜯어도 그릇을 쉽게 채우기 힘들어 마음은 정말 조급해진다. 한시라도 빨리 채취한 김을 민물에 넣고 여러 번 씻어 바닷물의 소금기를 빼야 하고. 대나무 발에 한 장 한 장 떠서 해가 뜨기 전에 말리기 위한 준비를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해에 다 말리지 않으면 색이 변하고 상해 상품의 질이 떨어지므로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 하루 수고가 허사가 되므로 어떻게든 해가 떨어지기 전에 잘 마르도록 기원하면서 자주 들여다보는 일도 잊지 않는다. 김이 다 마르면 걷어다 백장씩 모아 작두에 네 귀를 맞춰 자르고 묶으면 그때서야 길고 긴 하루가 마감된다. 겨울에 날이 따뜻하면 김이 건강하지 못하고 병이 생기므로 김을 양식하는 어민들이 말하기를 겨울은 땡땡 얼어붙게 쌩쌩 추워야 한다고 한다. 이해가 가는 말이다. 시댁에 가서 단 하루였지만 김을 만져본 이후로 나는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마땅히 받아들이고 김을 구울 때나 자를 때 떨어지는 부스러기 한 조각도 심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은 자줏빛을 지닌 해조류이기 때문에 자줏빛 자(紫)자를 쓰는 자채(紫菜)라고도 부른다. 겨울 바다에서 자라므로 그런지 그 성질이 서늘하고 맛은 달고 짜다. 목에 생긴 염증이나 통증. 만성기관지염. 해수. 설사. 소변을 볼 때 느끼는 통증 등에 효과가 있으며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잘 못 자는 실면의 증세에 도움이 된다. 또한 밭에서 나는 다른 채소 못지않게 비타민 C를 많이 함유되어 있고 철분과 칼륨. 타우린의 함량도 높아 성장기의 어린이나 혈압이 높은 어른 모두에게 좋은 식품이다. 요오드 함량이 풍부하여 갑상선부종이나 골다공증에 도움이 되며 항궤양인자인 비타민U가 함유되어 있어 궤양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김은 날이 더워지기 전까지는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굽는 성가신 작업을 하지 않고도 그냥 구워 간장만 찍어 쌈을 싸서 먹어도 맛이 있고 좋지만 날씨가 따뜻해지고 습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습기를 먹어 눅눅해지고 색도 자색으로 변하여 맛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색이 변하고 습기를 먹기 전에 찹쌀로 풀을 쑤어 김에 발라 부각을 만들어 두고 먹거나 간장을 끓여 부어 장아찌로 만들어 두고 먹으면 좋다. 남편에게 있어 김은 어린 시절에 집안의 생계를 잇는 주된 수입원이었지만 제대로 모양을 갖춘 김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작두에 의해 잘려진 부스러기만을 모아두었다가 밥상에 올려주셨기 때문이라 했다. 그나마도 모아두었다가 내다 팔았기 때문에 김을 양식해서 파는 일로 생계를 꾸려 가는 집이었지만 부스러기나마 마음놓고 넉넉히 먹지 못하고 자랐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어린 시절에 너무 자주 먹던 음식이라 그런지 남편은 지금도 김이 밥상에 없으면 너무 서운해한다. 덕분에 나도 딸아이도 김을 좋아하게 되었다. 술을 마신 다음날 남편은 해장을 위해 직접 김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별스럽다 생각했지만 한번 얻어먹어 보니 꽤 괜찮아 이제는 내가 직접 끓여 먹기도 한다. 지금은 김이 맛있는 계절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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