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동지(冬至)는 명일이라 일양(日陽)이 생(生)하도다 시식(時食)으로 팥죽 쑤어 인리(隣里)와 즐기리라 새 책력 분포하니 내년 절후 어떠할꼬 <후략> - 농가월령가 11월령 중에서 며칠 후면 동지(冬至)다. 동지는 한자의 뜻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말로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긴 날이다. 동지가 지나면 낮의 길이가 매일 1분씩 길어진다. 그래서 조상들은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날로 삼기도 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설. 임금의 생일과 함께 3대 명절로 꼽히던 날이 동지였는데. ‘동지는 양기(陽氣)가 생기는 날이고 군자가 즐거워하는 때이니. 이날부터 조회를 크게 하고. 또 임금과 신하가 함께하는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태종실록>에 남아있다. 비슷한 기록이 <세종실록>에서도 보인다. 동짓날 궁에서는 우유와 우유죽(타락죽)을 공신에게 내려 약으로 쓰기도 하고 전약이라 불리는 음식을 만들어 추위에 몸을 보하고 악귀를 물리치는 약으로 먹었지만 서민들은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먹었다. 동지에 팥죽을 쑤면 가장 먼저 사당에 올리고 방이나 곳간. 장독대. 헛간 등에도 놓아두고 대문이나 벽에는 뿌리기도 했다. 팥죽의 붉은 색이 잡귀를 쫓고 잔병을 없애며 액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동지가 동짓달 초순에 드는 애동지(兒冬至)에는 팥죽을 끓여 먹지 않고 대신 팥시루떡을 해먹었는데 어린 아이들에게 액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조상들은 팥이 같은 과의 콩보다 크기가 작고 붉다 하여 적소두(赤小豆)라고 부르는데 <동의보감>에서는 적소두가 성질은 따뜻하지도 차지도 않으며 독은 없는데 주로 몸 안에 있는 수분을 배설시켜서 소변을 잘 나오게 하여 몸이 붓는 것을 치료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팥은 대략 57%의 당질과 21%의 단백질. 1%의 지방과 함께 다른 두류에 비해 많은 양의 비타민B1을 함유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사포닌도 가지고 있어 지방의 분해대사를 도와 비만을 막아주며 통변작용도 한다. 잉어와 함께 끓여먹으면 몸 안의 쓸데없는 수분을 제거하고 소변을 잘 보게 하는 효능이 특히 강해지므로 조상들은 산후에 부기를 빼기 위해 자주 사용하였다. 또한 산후에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사람의 유즙분비를 돕는 작용도 한다. 하지만 몸에 진액이 부족하거나 자주 소변을 보는 사람. 너무 마른 사람이 팥을 자주 많이 먹는 것이 조심해야 한다. 소음인의 경우에는 소화가 안 될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외할머니는 동지에 팥죽을 쑤어 꼭 동치미와 함께 주셨다. 애동지에 팥시루떡을 해주실 때도 언제나 그냥 팥만을 넣는 것이 아니라 굵은 무채를 듬뿍 썰어 넣은 팥시루떡으로 만들어 주셨다. 정조의 어머니인 홍대비가 즐겨먹던 떡이라고 알려진 것을 보면 홍대비는 팥만 넣은 팥시루떡을 먹으면 소화를 잘 시키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팥죽이나 팥칼국수. 팥시루떡을 먹을 때 무로 만든 반찬을 곁들였던 것은 소화가 잘 되게 하려는 조상들의 지혜로 추측된다. 음식을 하기 위해서 팥을 삶을 때는 팥이 끓기 시작하면 첫물은 버리고 다시 물을 잡아 끓여야 하는데 만들어 놓은 음식이 쓴맛을 내거나 혹시 일으킬지 모를 소화 장애를 미리 막기 위함이다. 아쉽지만 올해는 음력으로는 11월 초순에 동지가 들었으니 팥시루떡을 해먹는 애동지에 해당한다. 가을무 듬뿍 썰어 넣고 팥무시루떡 쪄서 먹으면 내년에 혹시 올지도 모르는 액운이 다 날아가 버릴 것이다. 맛있는 시루떡도 먹고 귀신이나 액운을 쫓을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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