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글 <연암선생 서간첩>을 번역한 책이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라는 이름으로 2006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연암집>에도 실려 있지 않은 연암의 사소한 일상이나 가족 관계 혹은 집안의 살림살이 등 연암의 사적인 생활이 담겨 있어 그간에 내가 알고 있던 강인한 연암의 모습과는 달리 소박하고 친근한 이웃 같은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직접 고추장을 담아 아들에게 보내거나 소고기를 볶아 보내는 등 일상 속 연암의 맨 얼굴이 드러나 자상한 아버지. 인간 연암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니 너무나 감동적이지만 편지의 내용을 보면 현대인들이 가져야할 생산자와 소비자로서의 도리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너무 확대해석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탓하는 사람이 있다면 음식을 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 사람의 도리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추장 작은 단지를 하나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온전히 익지는 않았다.” 라며 손수 담근 고추장과 함께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데 연암은 그 편지를 통해 고추장을 만든 생산자로 소비자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에 대한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다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잘 받아서 조석 간에 반찬으로 하느냐? 왜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느냐? 무람없다. 무람없어. 고추장은 내 손으로 담근 것이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주면 앞으로도 계속 두 물건을 인편에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라며 아들을 꾸짖는 내용도 있다. 이는 소비자로서 혹은 음식을 먹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생각하며 만든 음식에 대해 적어도 애정을 가지고 정당한 평가를 하며 맛있게 먹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 뜻을 생산자에게 반드시 전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짧은 편지 속에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교훈이 담긴 편지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나는 연암의 책을 통해 크게 깨달음이 있었고 함양의 수많은 특산물과는 달리 ‘장 담그는 아버지 연암 박지원’을 스토리텔링 하여 재미있는 일을 진행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일을 세상에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함양에서 ‘우리장아카데미-전통장醬문화해설사’ 과정의 교육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에는 드디어 30여 명의 전통장醬문화해설사가 탄생하는 감격스러운 수료식을 견불동된장마을에서 가졌다. 우리장醬아카데미를 통해 배출된 이들 전통장醬문화해설사들은 앞으로 함양에서 우리장醬살리기운동을 시작으로 하여 역사적으로 고증된 자료의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전통장을 조미료로 사용하는 착한식당 늘려가기. 집에서 직접 전통장 담가 먹기 등의 소극적인 활동은 물론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전통장 맛있게 담가 먹는 방법의 교육. 전통장연구소의 설립. 전통장마을의 육성 등을 위해 활동하게 될 것이다. 연암은 함양에서 현감을 지내는 동안 그의 정치적인 철학이나 학문의 깊이가 무르익었다고 한다. 한양에서 먼 함양 땅에서 자신의 학문이나 정치 철학. 세계관이 숙성되는 동안 고추장을 담가 인간 연암도 같이 숙성되고 있었다고 짐작되니 더 반갑고 좋다. 연암이 익어가고 고추장이 익어가는 함양의 어디를 가더라도 항아리가 놓여있는 식당들이 즐비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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