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배추 캐여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방고래 구들질과 바람벽 맥질하기 창호도 발라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로 터울하고 외양간에 떼적 치고 우리집 부녀들아 겨울 옷 지었느냐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10월령 중에서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 중에는 입동이 지나면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이 있다. 며칠 전 이미 소설이 지났고 또 얼마 후면 대설이 될 것이다. 소설에는 눈이 적게 오고 대설에는 눈이 많이 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올해는 정말 소설 무렵에 함양에 지리산에 첫눈이 내리고 그 이름값을 했다.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고 했듯이 첫눈과 첫얼음이 찾아들므로 민가에서는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와 호박오가리. 곶감깎기 등의 대대적인 월동준비를 한다. 수많은 겨울준비 중에 뭐니뭐니 하여도 김장이 가장 큰 일인데 ‘김장하니 삼동(三冬) 걱정 덜었다.’고 하는 말을 봐도 알 것 같다. 얼어붙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묻는 김장독 속의 김치는 겨울에 부족한 야채 대용으로 다음해 봄에 새 나물이 나올 때까지 장기간 저장이 가능한 아주 훌륭한 음식이었다. 김장을 할 무렵의 배추는 몇 차례의 서리를 맞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몸에서 수분을 뺀다. 그래서 서리를 서너 번 정도 맞고 적당히 수분이 빠진 배추로 김장을 해야만 마지막 한 포기까지 싱싱하고 아삭한 김치를 먹을 수 있다. 배추만이 아니라 모든 식물은 겨울이 오기 전 지상부에서 수분과 영양분을 모두 땅 속 뿌리로 내려보내 다시 올 봄을 준비한다. 김장도 끝나고 겨울 준비가 끝나면 외기는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가 더욱 추워지고 동물들은 동면으로 들어가는데 이때는 사람들도 활동을 줄이고 거두어들인 기운을 낭비하지 않도록 신체의 리듬을 느리게 하며 자연과 더불어 휴면기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이 무렵에는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므로 사람들도 일찍 잠자리에 들고 늦게 일어나며 바깥 활동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다. <황제내경>에는 ‘자연계의 만물이 저장 상태로 들어가고 물과 땅은 얼어붙고 陰寒이 성하며 陽氣는 쇠퇴한다.’ 라고 했으며. ‘동삼월(冬三月) 이는 폐장(閉藏)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겨울은 물과 배속되는 계절이고 그 기운이 차며 우리 몸에서는 신(腎)에 통한다. 하늘의 기운이 차가워져 바람이 차고 매서우며 땅이 얼어붙고 만물을 거두어 저장하는 계절이므로 인체의 양기는 허해지고 추운기운(寒邪)이 우리의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음선정요(飮膳正要)>에서 ‘겨울철의 기후는 추우므로 기장 등의 열성(熱性) 음식물을 먹어 그 추위를 막아야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겨울에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을 먹어 추위를 이기는 것이 중요하며 활동을 많이 하게 될 계절을 위해 몸을 보(補)하는 것이 중요하다. 겨울은 우리 몸의 장기 중 신(腎)에 속하고 인체의 가장 정미로운 생명 물질인 정(精)을 저장하는 계절이므로 사계절 중에서는 몸을 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이다. 그러므로 비위의 운화기능이 비교적 강건한 시기인 겨울에 몸을 따뜻하게 하고 정(精)을 더하며 신음(腎陰 )과 신양(腎陽)을 보(補)하는 음식을 먹어 건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까닭에 겨울에는 생으로 먹는 찬 음식이 몸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따뜻한 성질의 음식물로 몸을 따뜻하게 보하며 고기를 먹어 보익강장(補益强將) 작용을 증강시켜야 하나 열량이 높은 기름진 음식을 과식하면 건강한 비위의 운화기능으로 살이 찌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의 선조들이 겨울에 김장김치를 제외하고는 생나물을 먹지 않고 봄부터 준비해온 묵나물로 밥상을 차려온 것은 참으로 건강하게 겨울을 나는 대단한 지혜였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