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에 물을 많이 붓고 푹 퍼지도록 끓여 반유동식으로 만든 음식을 우리는 죽이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粥으로 쓰는데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죽(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재미있게 설명하였다. 죽(粥)은 미(?)라고도 하는데 양옆에 궁(弓)자가 있고 중간에 쌀을 의미하는 미(米)자가 있다. 이는 마치 쌀을 가마솥 안에 넣고 솥 안에서 삶는 모양이며 또 궁(弓)이 파도가 치는 모양으로 두 개의 궁자 안에 쌀 미(米)자가 들어 있어 쌀이 물속에서 끓을 때의 모양이라고도 하였다. 우리민족의 식생활사를 통해 살펴본 죽은 주식대용·별미음식·보양식·치료식·환자식·구황식 등 여러 구실을 하였다.〈북새기략 北塞記略>에는 "곡물이 매우 귀하여 귀보리(耳麥)로 죽을 쑤어 먹는다"고 하여 구황식품으로 죽을 먹던 풍습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보리죽도 먹지 못하는 시기에는 나무껍질이나 나물을 뜯어다가 죽을 쑤어먹었으며.〈임원십육지 林園十六志>에는 무죽·당근죽·쇠비름죽·근대죽·시금치죽·냉이죽·미나리죽·아욱죽 같은 구황죽이 다양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조선무쌍요리제법 朝鮮無雙料理製法>에는 "죽이란 물만 보이고 쌀이 보이지 않아도 죽이 아니오. 쌀만 보이고 물이 보이지 않아도 죽이 아니니. 반드시 물과 쌀이 조화를 이루어 부드럽고 기름지게 되어 한결 같이 된 후에라야 죽이라 이른다""고 죽의 성질을 정리한 글도 보인다. 죽의 가장 기본은 흰죽으로 흰쌀을 그대로 볶다가 물을 붓고 끓여 쑨 것으로 죽에는 그 농도와 쑤는 방법에 따라 미음·응이·원미죽·암죽·죽 등이 있다고 분류하였다. 미음은 곡물을 충분히 고른 후에 체에 받아낸 것으로 죽보다 묽은 것이고. 응이는 녹말가루로 죽을 쑨 것이며 원미죽은 곡물을 굵게 갈아서 쑨 것이고. 암죽은 곡식의 가루를 밥물에 타서 끓인 것이다. 주재료에 따라 흰죽·팥죽·좁쌀죽·깨죽·잣죽·호박죽·야채죽·전복죽·굴죽·고기죽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최초의 죽은 어떤 목적으로 먹게 되었으며 어떤 형태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기는 하지만 구황식품의 목적을 가진 죽은 적은 양으로 많은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으므로 그 기원이 아주 오래되었을 것이라 여겨지며 죽에 넣던 나물과 푸성귀는 절기와 어우러지는 음식으로 분류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죽에 과거보다 더 다양한 재료들을 첨가하여 보양식으로 먹기도 하며 재료들을 미리 손질하여 냉동고를 이용해 저장해두고는 간편하게 아침식사 등의 대용으로 먹기도 한다. 아침식사의 대용이나 어린이의 이유식으로 혹은 노인들의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는 죽에 흑임자와 우유를 이용해 쑤어먹는 흑임자타락죽이 있다. 조선시대의 궁에서는 겨울이 시작되는 10월 상달부터 다음해 이월까지는 우유와 우유를 이용해 타락죽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겨울에는 타락죽만한 보양식이 없다는 이야기와 상통한다. 한 사람이 먹기 좋은 한 그릇 타락죽을 끓이려면 물 한 컵에 우유 한 컵을 넣고 섞은 후에 쌀가루나 각종 가루를 밥숟가락으로 크게 한 숟가락을 넣고 푼 다음 끓이면 된다. 일반 죽을 쑬 때와는 달리 오래 끓일 필요가 없이 한 번만 우르르 끓으면 불을 끄고 견과류나 마른 과일 등을 고명으로 올려 먹으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훌륭한 간식이며 식사대용인 각종 이름의 타락죽이 탄생하는 것이다. 끓이기는 쉽지만 영양은 최고인 겨울보양식 타락죽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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