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도장에 다니면서 활을 쏘기 시작한지 제법 여러 해가 되었다. 절친한 친구가 나이 든 사람의 운동으로는 활쏘기처럼 알맞은 운동은 없을 것이라면서 권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따라 나섰던 것인데 요즘은 내가 그 친구보다 더 열심히 다닌다. 궁도장에 나가기 전까지는 활이란 그 방면에 소질이 있고 또 돈과 시간의 여유가 많은 사람들이 놀기 삼아 다니는 사치스러운 운동이니 나 같은 범인이 다닐 곳은 못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전혀 달리 인식하고 있다. 즉 활이란 나이 지긋한 사람의 운동으로는 아주 안성맞춤이어서 육체적 정신적 건강 유지에 매우 유익할 뿐 아니라 비용도 다른 어떤 운동보다 많이 들지 않는 참으로 건전한 운동이다. 사실이 그렇다. 활쏘기처럼 배우기 싶고 재미가 있으면서 정신이나 육체를 단련시켜 주는 운동은 드물다고 본다. 우선 많은 즐거움을 맛 볼 수 있어서 좋다. 사대에 서서 과녁을 향해 온 정신을 집중시키고 왼손으로는 활을 꽉 잡아 힘껏 밀고 바른 손으로는 줄과 화살을 잡고 화살 끝까지 줄을 잡아 당겼다가 바르게 조정되었다 싶을 찰나에 줄을 잡았던 손을 떼면 화살이 활을 벗어나 힘차게 날아서 2-3 초 후에 “딱”하고 과녁을 맞히고는 튀어나오는 것을 봤을 때의 쾌감이란 활을 쏘아보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상상도 못하리라. 십년 묵은 체증이 싹 가신다고 할까. 머리 속에 쌓였던 모든 근심 걱정이 한 순간에 모두 사라진다고나 할까. 아니면 평생에 갖고 싶어하던 모든 것을 일시에 얻는 기쁨이랄까. 이 한 순간만은 천하가 내 것 같은 희열이 온 몸에 흐른다. 사대에 서서 과녁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차고 있던 다섯 발의 화살을 다 쏘고 나올 때까지는 과녁을 꼭 맞춰야지 하는 일념뿐이지 다른 일체의 잡념은 사라진다. 화살 하나를 보내고 다시 내 차례가 올 때를 기다리면서 이번에는 꼭 맞춰야지 하는 다짐과 좀 전에 쏠 때 어떤 점이 잘못 되었는가를 새겨 보면서 배에 힘을 주고 양다리로 굳건하게 서서 주위가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오직 과녁만을 응시한다. 나이가 많다고 직장에서도 내 몰린 요즈음 나의 생활에는 사대에 서서 과녁을 응시하는 이 짧은 시간이 가장 즐겁다. 그래서 머리가 어지럽거나 가슴이 답답한 걱정거리라도 생겼을 때는 하던 일을 미련없이 털어 버리고 궁도장으로 달려가 활을 당기면. 답답했던 가슴이 활짝 열리고 가슴속에 쌓였던 먼지가 다 날아간다. 이 운동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서 좋다. 사실 활 쏘기란 혼자서 하는 운동이다. 화살을 차고 혼자 사대에 서서 과녁을 향해 활을 당기면 된다. 아침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언제든지 편리한 시간에 나와서 쏠 수가 있어서 좋다. 어두운 밤에도 야광 장치가 잘 되어 있어 활쏘기에는 지장이 없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좀 불편해서 그렇지 운동을 할 수는 있다. 혼자서 하는 운동이지만. 여럿이 나란히 서서 차례로 화살을 보내면 재미가 더하다. 둘이나 셋 또는 열 사람이라도 함께 즐길 수가 있으며. 두 편 또는 세 편으로 나뉘어 겨누어도 좋고 가벼운 내기를 해도 즐겁다. 궁도장에 출입하려면 약간의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돈이 드는 것이 아니고 활과 화살 등 장비를 갖추는 데 기 십만 원의 돈이 들고. 입회비나 월 회비라 해서 약간의 돈이 필요하다. 이만한 돈은 웬만한 레저스포츠를 즐기려면 다 소요되는 돈이 아니겠는가. 한 달에 이삼만원의 비용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운동이 흔치 않다고 본다. 궁도는 예니 운동과 달라서 운동과 동시에 도를 닦는 수련 활동이다.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위와 같이 즐거움만 있는 듯 보이지만 도를 닦는 길은 멀고도 어렵다. 궁도인들의 최고 영예인 ‘명궁’칭호를 받으려면 수년간 수련을 쌓고 소정의 시험을 여러 번 통과 해야 하므로 타고 난 소질과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정신력이 어울리지 않으면 바라 볼 수가 없다. 나도 궁도에 입문한지 십 수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초단에 머물고 있다. 단이란 태권도나 유도 또는 바둑 같이 수련을 쌓아 소정의 시험에 합격하면 실력을 인정하는 제도인데 초단에서 9단까지 있고 5단이 넘는 사람 중 인품이 궁도인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에게는 명궁이라는 칭호가 따른다. 궁도인은 궁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많다. 궁도인 모두가 알고 지켜야 할 궁도 9계훈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규율이 정해져 있어 이를 지켜야함을 물론이고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져야하며 특히 복장이 단정하여야하고 남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언행을 하여서는 안된다. 활을 잘 쏘기 위해서는 매일 거르지 않고 열심히 닦아야하지만 궁도인은 활쏘는 기능보다 사람의 됨됨이를 더 중하게 여긴다. 활량이라하여 돈 잘 쓰고 술이나 마시면서 한가하게 세상을 노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크게 잘못이다. 우리 겨레의 유일한 전통 무예인 궁도를 바르게 계승하고 더욱 발전 시켜야 할 사명을 가진 우리 궁도인들은 오늘도 전국의 수백 곳의 궁도장에서 145미터 전방에 세워진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힘차게 당기고 있을 것이다. 나도 더 늙어서 힘이 다할 때까지는 궁도인으로서 삶을 즐기고 싶다. 아울러 고고한 선비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 함양인들이 많이 나와서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 동참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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