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예배에는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6장1절 말씀으로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은혜란 고맙게 베풀어주는 신세나 혜택을 의미하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풀어주는 사랑을 말한다. 우리는 이런 은혜 속에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지속되는 은혜를 당연한 듯 생각하며 살아간다. 데일 카네기는 “은혜를 모르는 것은 마치 잡초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깨닫는 것은 마치 잡초 속에서 장미를 키우는 것과 같다.”고 은혜를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과 은혜의 그 아름다움을 지적하였다. 며칠 전 신문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우리나라가 굶주림에 허덕이면서 살던 시절. 그의 이모님은 매일 아침 걸인들을 위하여 100여명의 밥을 지어 제공했다는 것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100명의 식사를 해준다는 것이 생각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이면 걸인들이 문 밖에서 줄을 서서 밥을 줄 때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모님이 덜컥 병이 나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걸인들은 `왜 밥을 주지 않느냐`며 온갖 욕설과 함께 집에 돌을 던지면서 "이 집 망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고 한다.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복음서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우화적인 추리소설을 썼다고 한다. 예수님 만나 은혜 받은 사람들. 성경에는 그들이 그 다음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런데 오스카 와일드는 그것을 나름대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어떤 곳에서 예수님은 알코올 중독자를 만났다. “그대는 누구인가?” “예. 저는 절름발이었는데 주님께서 고쳐주셨지요. 그런데 그 때는 이렇게 저렇게 얻어먹고 살았는데 건강해지고 나니 할 일이 없어요. 누가 환영하지도 않고요. 그래 이럭저럭 하다 보니 타락하고 타락해서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어요.” 또 한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조폭이다. “아니 자네가 어떻게 폭력배가 되었나?” “예수님 죄송하지만 저는 원래 시각장애자였는데 예수님께서 저의 눈을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감격하고 감사했습니다만 눈감았을 때는 몰랐는데 눈뜨고 보니까 아니꼬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더럽고 치사하고 모순되고 부조리해서 울분이 터져서 주먹을 쓰다 보니 조폭이 되었습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르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가치 있는 아름다운 삶을 산다.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벌써 11월 중순을 맞이했다. 한 해 동안 땀 흘려 수고한 것을 거의 거두어들인 지금. 올 한해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 사람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되새겨 보며 감사의 시간들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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