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에 내려와 산지 만 8년이 되어 간다. 도시에서만 살다가 시골에 내려오니 여러 가지 삶의 양식들이 달라졌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도시에서와 달리 날씨에 아주 민감해졌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살 때는 비가 오든 안 오든 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시골에 와서 살면서 비 오는 일이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 비와 농사가 이렇게 각별한 관계가 있는 줄 예전엔 미쳐 몰랐다. 내가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나. 우리 마을 분들과 우리 교회 교우들 모두 농사를 짓기에 덩달아 날씨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비가 오지 않아도 걱정. 비가 너무 와도 걱정.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도 걱정이다. 지난 여름 가뭄과 이상 고온에 농작물들이 비틀거렸다. 게다가 수확 철 가까이 두 차례의 강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 때 가슴 졸였던 일이 생각난다. 올 가을 이런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가을걷이를 모두 마쳤다. 그리고 지난 주일 추수감사예배를 드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사가 흘러 넘쳤다. 모든 교우들과 한 마음이 되어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올렸다. 우리의 감사의 근원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서 인가?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져서 인가?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되었기에 감사한가? 그러면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할 때 불만스럽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평하고.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되지 못하면 원망하는가? 그러나 성경은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고. 우리에 양떼가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 없어도 오직 여호와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기뻐하겠다고 말한다. 나는 잘 모르지만 불경에 천지여기 하사구의(天地如己 何事求矣)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하늘과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이 이미 나와 한 몸인데 밖에서 구하여 찾을 것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도 이렇다. 어느 마을에 두 아들을 둔 아비가 있었다. 둘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전에 유산을 달라고 하여 타국으로 떠나 허랑방탕하게 다 써버리고 빈털터리 거지가 되었다. 먹을 것도 없어 죽게 되자 그제야 아비 집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었다. 아비 집에 가서 더 이상 아들이라 할 수 없고. 종으로 써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비는 먼발치에서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버선발로 뛰어가 맞이하며 새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찐 소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죽은 줄 알았던 내 아들이 돌아왔다고. 그 때 들에서 일하다 들어 온 첫째 아들은 잔치하는 소리를 듣고 화가 나서 아비에게 원망하며 말한다. “내게는 친구들과 놀라고 염소새끼 한 마리 주시지 않더니 아버지 재산을 다 허비한 이 아들에게는 잔치를 베풀어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비는 말한다. “얘야. 너는 나와 항상 함께 있으니 내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 것이 아니냐?” 하늘 아버지는 말씀하신다. “얘야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아버지 것이 다 내 것인데 우리가 더 이상 구할 것이 무엇인가? 내가 천지와 한 몸이니 내게 모든 것이 있는데 따로 무엇을 구하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아버지 것이 다 내 것인 것을 모르니 없다고 징징거리고. 더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다. 성경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하셨다. 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바로 내가 그 분 안에 있다는 것이 나의 감사의 근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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