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T야?”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엄마가 우울해서 빵 샀어” 라고 하면서 자녀의 성향이 T인지 F인지 알아보는 인스타그램 피드가 종종 올라온다. 아이가 “무슨 빵 샀어요?” 라고 물으면 T성향이고 ”엄마 왜 우울했어요?“라고 묻는 아이는 F성향이라는 것이다. 검색을 해보면 이런 해석이 나온다. “T는 이성적 사고인 thinking의 약어로 사실적 기반에 초점을 맞춰 대응함으로써 공감능력 제로 라는 의미로 쓰이고, F는 feeling의 약어로 감성적 사고를 기반으로 대응한다” SNS 뿐아니라 TV가 “너 T야?”를 널리 확산시키는 것을 보면서 T가 공감능력 제로라는 근거를 의심했다. 같은 내용으로 나를 시험했던 누군가가 “어? T인줄 알았는데 F네요?” 하며 당황했기 때문이다. 와중에 “아빠 T야?” 라는 광고도 등장했다. 개인적으로 혈액형이나 MBTI처럼 사람의 성격을 누군가가 정해놓은 유형에 맞추어 해석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A형인 나에게 O형인 줄 알았다는 말을 할 때나 나를 두고 ‘100% T’라고 할 때 인간의 복잡한 성향을 어떤 프레임으로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반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상황에 따라 감성이 작동할 때가 있고 이성이 작동할 때가 있으며, 수동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누르고 있었던 잠재된 능동성을 끄집어내 강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고 내향적이라고 판단했던 사람이 외향적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뉴스를 통해 목격하는 기만의 언행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MBTI의 무엇이라 규정할 것인가. 또 종교를 빙자한 잔인한 전쟁들, 호전적인 그들을 T라고 할 것인가, 이성적이지 않으니 F라고 할 것인가. MBTI의 유형에 호전적인 정치가라는 직업군이 있는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MBTI 검사의 문장으로 자신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판단하고 스스로를 결과에 따른 유형의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일부 사람들이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며 MBTI를 믿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 믿음에도 나름의 일리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정의할 수 없는 복잡성을 가진 존재이다. ‘숏패딩, 교실 가르는 패션 계급장“이라는 기사에서 보여주는 특정 세대의 숏패딩 유행 프레임이나 어떤 세대를 MZ, 알파 등의 약어들로 규정하는 것, 사회의 단편적인 현상을 전체의 현상으로 명명하여 묶는 것도 프레임으로 구속하는 그 무엇들이다. 매체가 앞장 서서 인간의 우연한 행동을 신조어로 묶어서 ’그런 사람’이라고 정의해 버리면 그 틀에서 나오기란 쉽지 않다. 인간에겐 T의 성향과 F의 성향이 공존되어 있다. “너 T야?” 라고 한 문장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사회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프레임이 쏟아질 것이고 AI가 가세하여 인간을 옥죄는 무엇을 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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