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젊은 사람 없나요?” 장시간 전화로 공인인증서 발급을 도와주던 농협 과장님이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젊은 사람을 찾는다. 얼결에 “당신은 노인입니다!”라는 선고를 받고 보니 마치 의사에게 시한부 선고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증서 비밀번호를 적어놓은 메모를 찾지 못해 온 집안을 뒤지다가 차라리 재발급을 받는 것이 났겠다 싶어 컴퓨터와 씨름을 하다 ARS 상담도 만만치 않아 은행 창구를 찾아 사고신고를 하고 집에서 컴퓨터로 작업을 하던 중에 들은 말이다. 결국은 업무시간이 지난 군청민원실에서 농협 직원의 도움을 받아 재발급을 받긴 했는데 젊은이는 10분이면 될 일에 노인은 하루를 보내고 애꿎은 농협 젊은이들에게 많은 수고를 끼쳤다. SNS는 기본이고 인증, 결제. 앱, 어쩌고저쩌고하는 세상에 이제 스마트폰은 요술 방망이가 되었다. 20여 년간 사용하던 텔레뱅킹을 버리고 폰뱅킹을 사용해보니 그 편리함이 이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부끄러운 것은 명색이 은행에서 30년 근무했다는 이가 “노인”이 되어 겪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만 65세가 되면 국가공인 노인이 된다. 급속한 사회변동으로 일어난 사회문제 중 노인에 관련된 문제를 노인문제(老人問題)라 하고 특히 빈곤, 질병, 고독을 3대 문제라고 하는데 노인의 시작이 80세 정도라면 몰라도 동의하기 어렵다. 굳이 기회균등이나 빈부격차 그리고 20대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는 것을 논하지 않더라도 빈곤과 질병, 고독이 어찌 노인들만의 문제일 것이며 더구나 높은 교육수준에 경제적 성취를 이룬 베이비 부머들이 대거 노인세대로 편입되고 노령연금이나 의료보험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복지 수준을 감안하면 노인문제를 질병이나 빈곤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구태의연하다. 우리나라는 대단한 나라가 되었다. 당연히 이 나라를 만든 노인들도 대단한 사람들이며 정치, 경제적 영향력 또한 막강하기 때문이다. 2004년 당시 집권당의 대표가 “미래는 젊은이들의 무대니 노인들은 투표를 안 하셔도 괜찮다”라는 “노인폄하 발언”에 전국의 노인들이 등을 돌려 당시 탄핵의 후폭풍으로 전멸이 예상되던 총선에서 야당을 기사회생시키고 이어진 대선에서도 대패한 일이 있었을 때만 해도 젊은이들을 향한 투표 독려 발언을 가지고 “노인세대가 너무한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분노가 무엇인지 알 듯도 하다. 20년이 지나도록 이 발언은 정치인의 대표적인 설화(舌禍)로 회자되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아동, 청소년과 청장년세대보다 노인세대를 정말 각별하게 신경을 쓰게 되는 신호탄이 되었고 노인들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으려 조심하는 계기가 된 것은 아이러니 한 일이다. 최근 야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원 투표를 ARS로 하는데 이때 본인인증 절차를 가지고 후보 간에 의견을 달리 한 일은 이 시대의 “노인문제”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세가 있으신 당원들이 불편하지 않게 인증절차를 생략하자는 측이나 당원을 인증절차도 모르는 사람으로 “노인폄하” 하는 것이라며 해야 한다는 측이나 정치적 속셈이야 뻔하지만, 문제는 IT 강국인 우리나라에 젊은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단순한 스마트폰 사용법도 많은 노인에게는 아직도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미래는 젊은이들 것인지 몰라도 현재는 어른들의 것이고 여론은 “어르신”들의 것인데 어쨌거나 스마트폰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노인문제”가 되었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정보와 소통방법과 편리함은 빈곤, 고독, 질병이라는 노인문제 즉 삶의 질과도 무관하지 않고 외면하고 살 방법도 없어서 노인세대가 고도의 IT 사회에 적응하고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은 시급한 일이다. 다가오는 단체장 선거에 출마하실 분들은 관내 노인들의 스마트폰 활용능력 제고를 위한 매력적인 공약(公約)을 고민해 보셔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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