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노는(?) 날이 많아서 시월을 좋아했다. 유난히 시월에는 국정 공휴일이 많았다. 그땐 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치게 되면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다행히 요즘은 대체 공휴일이 지정되면서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오히려 대체 공휴일 때문에 3일 정도는 거뜬하게 연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공휴일을 새롭게 지정하는 문제를 놓고도 갑론을박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시간이라도 더 일을 해야 생산량이 증가한다는 강박관념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새로운 화두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에 대한 이견이 없어졌다.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여행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대다수 국민들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치면서 서서히 해외여행의 길이 열리는 모양새다. 아직까지는 혹시라도 모를 감염 우려 때문에 해외여행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백신 접종의 성과가 나타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을 회복하게 될 거라는 기대가 있다. 심지어 가족 모임까지도 제한했던 우리의 상황을 감안하면 감회가 새롭기까지 하다. 오죽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점으로 기원 전(B.C, before Christ)과 기원 후(A.D, Anno Domini - 주님의 해)를 세계적인 연호로 사용했지만, 이제부터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전과 이후의 의미로 B.C를 사용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그만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에 대한 공포는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다행히 백신 접종이 일반화하면서 일상이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는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7월에 필자의 자부가 첫 아들의 돌잔치를 한 이후에 둘째 아이를 가지면서 육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시댁에서 도움을 줄을 수 없었던 필자의 입장에선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컸었다. 그런데 대체공휴일 덕분에 영덕에 있는 친정집에서 육아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임신 초기라 조심해야 하는 임산부의 입장이라 추석에도 시댁에 올 수 없었기에 이번에도 필자가 용인에 사는 둘째아들 집에 잠깐 들르는 것으로 아쉬운 추석 가족모임을 가졌었다. 그러다가 영덕에 사시는 사돈댁에서 며느리를 모셔(?) 가면서 첫째 손주의 육아와 임신 중에 있는 둘째 손주도 안정적인 태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보름 이상 혼자 직장에 다니게 된 둘째아들이 대체공휴일로 연휴를 맞아 필자와 함께 산청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세대 젊은이들은 친가와 처가를 공평하게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덕에 지난 추석 때 못한 효도를 이번 연휴에 보충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아들이 마련해 준 돼지고기 수육 잔치는 최고였다. 보아 하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의 가사 분담을 우리 아들이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들만 둘을 둔 아비로서는 딸을 가진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사돈댁에서는 잘나고 멋진 사위를 자랑하고 다니시는 걸 보면서 왠지 뿌듯함을 느낀다. 이번엔 딸을 낳았으면 좋겠다는 둘째아들 내외의 바람에 4대에 걸쳐서 딸이 없었던 필자의 가문을 봐서는 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떠하랴? 아들이건 딸이건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감사하게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대학에서 만난 둘째 아들 내외는 나름대로 임신과 육아에 대한 소신이 있다. 예전과는 다르게 육아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끼는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서 어쩌다가 한 번씩 찾아오는 대체 공휴일은 꿀맛일 것 같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야외 활동을 하라면서 10만원씩 지급해 주고 하루 휴가까지 주는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는 둘째아들이지만, 여전히 임신과 육아는 낯설고 까다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대체공휴일 기간에 자신들만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젊은 부부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재작년부터 설날에도 추석에도 역귀성이라는 명목으로 아들 집을 찾았던 필자에게는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이 고맙기만 했다. 직장 선배 덕분에 난생 처음 볼링을 치게 되었다면서 볼링을 치러가자는 아들의 성화(?)를 받아들여서 볼링장에도 가봤다. 어설픈 몸짓으로 굴린 공이 열 개의 핀을 다 쓰러뜨렸을 때 필자는 모든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모처럼 아들 앞에서 잘난 척(?)을 하면서 노익장 아닌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번엔 당구장으로 갔다. 이미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은 당구였지만, 목회자가 당구장에 간다는 것이 왠지 겸연쩍었다. 당구 역시 처음 쳐 본다는 둘째아들은 이과생답게 정확한 각도로 당구공을 굴렸고, 빨간 공 대신에 하얀 공만 맞추는 필자는 꼼짝없이 지고 말았다. 그러하나 오랜만에 아들과 보낸 시간은 너무 행복했다. 잠깐이나마 며느리에 대한 염려와 미안함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요양병원에 누워있는 아내에 대한 걱정과 염려이다. 건강했을 때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이 죄책감으로 남는다. 대체공휴일을 아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알이 꼭 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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