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기업이 함양에 있다. 산양삼을 이용한 가공제품을 세계로 수출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 산림청·한국임업진흥원 주관 단기임산물수출발굴대회 금상, 농산물수출확대유공자 표창 등을 수상했으며 산양삼 개인1호공장, 함양산양삼특구1호 등으로 인정받는 기업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함양산양삼’. 이러한 성과는 이종상(58세) 대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농업회사법인 (주)함양산양삼을 이끌고 있는 이종상 대표가 함양에 온 것은, 아니 한국으로 들어온 것은 2013년. 대학 졸업 후 미국 뉴욕에서 10여년 간 세일즈맨으로 일했으며 그 경험을 인정받아 산양삼법인 해외이사를 맡게 됐다. 고국으로 돌아와 삼을 접하긴 했지만 산양삼을 이용해 상품을 만드는 것은 원재료값이 워낙 비싸 가격대를 맞추기 어려웠다. 특히 대기업이 선점해 있는 국내에서 중소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판매하여 성공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우리 기업이 만든 제품을 누가 알아주겠어요. 그래서 해외로 눈을 돌렸죠” 본격적으로 산양삼을 제품화 하여 판매를 시작한 것은 그가 법인의 대표를 맡게 된 2016부터다. 해외 영업경험을 발판삼아 혈혈단신으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다녔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인삼과 산양삼도 구별하지 못했다. “일단 산양삼이 좋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목표였죠. 그래서 몇 가지 저가제품을 만들었어요” 대표품목으로 산삼석류유산균, 산삼비타 등. 이 외에도 산양삼마스크팩, 산양삼 진생플러스양태반크림과 같은 화장품으로 틈새시장을 노렸다. 단일품목으로 3년6개월 만에 처음으로 일본에 수출한 제품이 있다. 코로나 시기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첫 수출에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속적으로 일본을 왕래했던 성과가 나타난 것이다. “젤리스틱 제품이었어요. 포장디자인부터 제품개발까지 일본인 소비자의 취향에 맞췄어요” 출시된 제품 중에 ‘산삼한뿌리’는 미국에 전 제품이 수출됐다. 처음부터 제품을 만듦과 동시에 수출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이, 산양삼으로 만든 최초의 상품으로 세계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이종상 대표. 무모했던 도전이 결실을 내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 제품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7000만원에서 1억원. 광고, 해외경비를 포함하면 추가비용은 플러스된다. 지금은 완판기록을 세우고 있는 산삼드링크가 2년 전까지만 해도 1만개를 파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번 만들 때 기본 8만개를 만들었는데 7만개는 해마다 버려졌다. “힘들었던 점은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는 거죠. 해외로 수출하는 산양삼 제품이 최초이고 처음이다 보니 국가 간 인정하는 논문도 없고 산양삼 효능을 증명할 근거도 없었죠. 수출할 때 필요한 HS코드(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에 따라 대외 무역거래 상품을 총괄적으로 분류한 품목분류코드)가 없어서 기타품목으로 수출되니까요. 이건 국가가 할 수 있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죠” 함양농식품수출진흥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종상 대표는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그 길로 함양의 농가들을 이끌고 있다. 회원들에게 항상 가격을 최대한 낮게 책정하라고 조언한다. 원재료값이 비싼 산양삼으로 제품을 만들어야 했던 그는 함양의 우수농산물과 결합하여 제품을 출시했다. 매실과 삼, 자색양파나 양배추와 혼합한 즙, 이 외에도 함양산삼차, 산삼떡... “제주도 하면 오메기떡이 생각나듯 함양을 산삼떡의 메카로 만들고 싶어요” 출시된 지 10일밖에 되지 않은 산삼떡은 출시하자마자 인기를 끓고 있다. “제가 한다고 하면 카피는 없을 겁니다. 뭐가 됐든 최초가 되겠지요” 시장이 원하는 물건,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이종상 대표는 앞으로 출시될 제품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는 함양을 이끌어 갈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줄 기업인의 의무가 한 자리를 차지한다. “수출기업에 대한 함양군의 지원과 기업의 사회환원이 선순환되는 구조가 되어야겠죠. 제가 함양산양삼에 몸 담은 지 7~8년이 넘어가는데 남은 인생동안 산양삼 선두주자로 길을 터주어 누구라도 이 길을 갈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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