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독일’ 이라는 국명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소시지? 맥주? 아니면... 히틀러? 유대인 약 600만명을 잔혹하게 죽여버리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게르만족의 부흥을 꿈꿨던 그 히틀러. 이 히틀러를 막기 위해 일명 ‘히어로’ 들이 등장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나라들 말이다. 이번 글에서 나는 프랑스의 역사 일부를 조금 다뤄보고자 한다.1940년, 2차 세계대전 도중 독일은 프랑스를 침공하여 괴뢰국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에 프랑스의 자유를 지키려던 세력인 자유 프랑스는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중 임시 수도는 알제리의 알제였다. 그리고 1945년, 자유 프랑스는 결국 자신들의 본토를 되찾았고, 전쟁 또한 끝이 났다. 독일은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였고, 히틀러는 자살을 하였다. 이에 알제리인들 또한 기뻐하였다. 이제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알제리는 사실 역사가 깊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바다 하나만 건너면 바로 마주하고 있는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프랑스는 이 알제리를 호시탐탐해왔었다. 그러다가 1830년대에 들어 북아프리카의 해적이었던 바르바로사 해적을 소탕한단 명분으로 알제리의 술탄을 내쫓고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약 100년이 넘는 식민 생활이 이어졌고, 알제리인들은 프랑스 본토에 의해 무식하고, 비문명화된 아랍인들로 취급되었다.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을 버린다면 프랑스인으로 인정해주는 정책을 계속 이어왔고 알제리인들의 불만은 폭발하기 일부 직전이었던 상황인 것이다. 알제리인들은 이에 전쟁이 끝났으니 자신들의 독립이 다가왔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알제리인들은 5월 8일, 알제리 전역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알제에서 멀지않은 셰티프라는 곳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프랑스 군경이 알제리 독립 시위대와의 충돌 중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프랑스 군경은 시위대에 발포를 하였고, 이 과정에서 비무장한 시위대가 다수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시위는 폭동으로 확산되었고, 유럽 민간인들이 분노한 시위대에 의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프랑스 정부가 내린 결정은 보복 학살이었다. 프랑스군은 알제리 독립운동 시위에 참여한 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농촌까지 내려와 의심되는 자들을 모두 즉결처형하였다. 또한 접근이 어려운 마을들은 폭격을 하였으며, 케라타라는 해안 마을에 함포사격을 하였다. 5월 12일까지 ‘보복’은 계속되었다. 이로 인해 사망한 알제리인은 1020명(프랑스 정부 공식)에서 약 45000 여명(알제리 주장)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알제리인들은 봉기를 일으켰고, 이가 알제리 전쟁이다. 하지만 알제리 전쟁 도중에도 프랑스의 악행은 계속되었다. 전쟁 중, 프랑스 파리에서 알제리계 프랑스인들이 평화 시위를 벌이자, 이들에게 총을 발포하여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고, 시위대에 있던 아이들을 프랑스 군경이 강으로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것이 바로 1961년에 있었던 파리 학살이다. 결국 알제리는 1962년에 독립을 이루었다. 그 많은 알제리 민간인들이 죽어나갔다는 것이 대가긴 하다. 프랑스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독립 투사들의 죽음에는 사과를 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알제리와 본토에서 벌어졌던 학살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과연 우리는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다른 나라의 영토를 빼앗은 독일을 징벌한 프랑스를 그동안 어떻게 알아온 것일까? 유럽의 모든 선진국들은 나쁜 놈이다.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독일만 욕하며 유럽의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을 미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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