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이름이 핫바지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변호사 아들에게 맞은 의사 아빠’라는 제목의 기사가 우리를 슬프게 했다. 평소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준 아버지를 폭행한 A씨(39세)가 상습존속폭행과 특수상해 및 재물손괴,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형을 받았다는 기사의 내용이다. A씨는 국제변호사로 알려졌다. A씨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의사인 자신의 아버지 B씨(69세)를 폭행해 왔다. 그러나 입에 담지 못할 온갖 패륜적인 욕설과 폭력에 시달려온 아버지는 자식을 잘못 키운 자신을 자책하며 재판부에 아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우울증과 정동장애(조울증)를 범행의 이유로 보았지만, 패륜적 작태라는 범죄행위는 용서하지 않았다. 세간에서는 ‘자식이 뭐기에?’라는 자조 섞인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식을 키우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부단한 노력을 한다. 자신의 가문에 걸맞은 아들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버지들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대가 어느 때부터인가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심리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영아기를 거치고 유아기에 접어들면서 자식들은 이미 대부분의 성격이 형성되고 고착되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릴 때마다 아버지들은 아이를 달래기에 급급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본능적으로 아버지의 약점을 잡게 되고, 아버지는 아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해 주면서 오로지 아이의 우수한 성적에만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나름대로는 아이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어마어마한 사교육비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물질적인 여유가 없는 아버지들은 품을 팔고 빚을 내서라도 자녀들의 뒷바라지에 공을 들인다. 그나마 엘리트로 자라는 아들을 보면서 아버지들은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자식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아버지의 돈을 편취(?)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알게 모르게 자식들에게 심한 중독 증세를 보이면서 서서히 자식들에게 놀아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권위는 사라지게 되고 자식들에겐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 되고 만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자괴감으로 무너지고 이미 자식의 흉포함은 도를 넘게 된다. 그렇게 되고 나면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마음 놓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하창고가 되고, 인륜이나 도덕은 마른 가랑잎처럼 색채마저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우울증이나 분노조절장애 등은 이내 조현병으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이는 지속적인 존속상해가 스스로의 인성을 망치면서 변종 바이러스처럼 유전자가 변형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성 중에 양심이라는 제어장치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무너지게 되면 인성은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고 만다.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되는 건 한순간의 일이다. 자식의 폭력에 길들여진 아버지는 점점 더 무력해지고 존속상해를 자행하는 자식은 이성을 잃고 만다. 결국 병든 가정은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아버지들은 무언가 자식들에 대한 기대 하나로 사는 사람들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의 육체가 서서히 무너지더라도 자식이라는 나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삼는 사람들이 아버지들이다. 인생이라는 커다란 솥에 한 덩어리 묵직한 근심을 안고 살면서도 사소한 기쁨으로 간을 맞추고 양념을 삼는 사람이 아버지다. 품 안의 자식들이 아버지의 태양계를 벗어나서 하나둘씩 떠나고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되더라도 새로 형성되는 자식들의 태양계를 바라보면서 대견해 하는 사람들이 아버지들이다. 아들에겐 큰 소리 치면서도 사위에겐 약한 사람이 아버지다. 며느리에겐 고맙다고 하면서도 딸에겐 한없이 미안해하는 사람이 아버지다. 그러기에 일 년에 한 번 두 번 찾아오는 것도 고맙고 다행한 일이지만, 이 핑계 저 핑계로 아버지를 찾아오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면서 애써 자식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버지다. 세월이 흐르면 푸르고 청청하던 소나무나 상수리나무 같았던 아버지가 어느새 고목나무가 된다. 속이 썩어서 뻥 뚫린 채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고목나무는 손주를 앞세우고 아들 내외나 딸 사위가 세단을 몰고 들어오는 걸 제일 반긴다. 더 줄 것도 더 내놓을 것도 없는 고목나무지만, 그 아래 평상을 펴서 시원한 그늘이라도 베풀어 주는 사람이 아버지다. 때로는 몇 마지기 세 귀 배미나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터를 놓고서 사업하는 아들이 우는 소리를 하거나, 빚에 쪼들리는 딸내미의 성화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아버지다. 그러나 아버지의 소변에서 거품이 꺼지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채는 자식은 별로 없다.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가지는 의미를 아는 자식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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