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드 보통의 <불안>은 어떤 위안을 주던 책이다. 불안은 보편적인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고 일련의 해법도 제시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가 책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소셜미디어를 책보다 우위에 두진 않는다. 매일 거듭되는 SNS의 접속은 참여보다 현상을 관전하는 편이고 ‘좋아요’나 팔로워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므로 소외감이나 불안을 느끼는 일은 없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든, 소셜미디어에서 야기되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이든 개인이 견고하면 불안은 제 역할을 못한다. 포모는 소셜미디어에서 느끼는 소외감이나 단절, 인터넷에서 정보를 놓칠까봐 두려워하는 증상, 다른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에 대한 공포, 따라서 놓치거나 제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의미한다. 이 정의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특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도, 어떤 집단에서도 일어났던,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범주가 넓어지고 직접적인 부딪힘이 없는 가상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로 특정 지었을 뿐이다. 물론 세대에 따라, 혹은 개인적이든 직업적이든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화에 엮여있다면 다른 문제가 된다. 이 지점에서 John Williams의 <STONER>가 떠오른다. 스토너는 책의 제목인 동시에 주인공의 이름이다. 스토너는 소셜미디어가 없었던 세상에 살았지만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불안의 요소들이 만연한 사회에 살았던 사람이다. 가난했던 성장기도, 결혼생활도, 교수로 몸담았던 대학사회도 그를 위협하는 불안의 요소들이 있었지만 불평등도 불합리도 모순도 치욕도 묵묵하게 견디고 지나가고 눈감고 비켜준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학문에 매진하고 교육적 소신을 버리지 않는다. 위협과 불안을 넘어버리고 자기의 뜻을 조용히 관철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FOMO 현상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줄 것이다. JTBC ‘싱어게인’ 30호 가수 이승윤은 자신의 음악을 주류에서는 비주류라 하고 비주류에서는 주류쪽으로 일컬어진다고 했다. 애매한 경계境界에서 ‘무명’의 삶을 살면서도 그 무명은 빛이 없는 무명성일 뿐이지 이름은 누구나 있다고 말함으로써 강한 자기확신과 타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는 면모를 보인다. 유명가수가 되어 SNS를 하면서 댓글도 보고 유명세도 지켜보지만 유명은 ‘세’가 따라붙기 때문에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을 하고, 자기를 포장했던 그 포장지가 뜯겨나갈 미래도 내다보며 무엇을 경계警戒해야 할지도 가늠한다. 생활이든 음악이든 자기진단과 통찰이 확실하고 속된 야망이 없으며 세상의 모순도, 불합리도 인지하고 있으므로 FOMO 현상에 휘둘리거나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이성적이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은 불안의 통제가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묘한 용어를 만들어(그것도 약자로)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얹는다. 인간사회의 잡다한 일들에 치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굳이 몰라도 되는 현상을 전파하며 불안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은 역설적으로 “식자우환”이 진리라는 것을 각인한다. 너무 많은 정보는 공해가 될 때도 있고 위협이 될 수도 있으며 다른사람이 아는 것을 나만 모른다는 자괴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tvN ‘월간 커넥트’에서 FOMO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그래서 뭐-”라던 반감은 공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을 도외시하지는 않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또 다른 이론으로 이를 비틀지도 모르고 또 다른 현상을 그럴듯한 용어로 양산할 것이며 그게 인간사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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