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구조론’은 현대 지질학의 대표적 이론으로 확실한 검증 절차를 거침으로써 누구나 동의하는 이론이다. 판구조론에 의하면 지구 지각은 대략 7개의 큰 판과 12개의 작은 판으로 나누어져 있고 지구 내 맨틀의 대류에 의한 움직임을 그 동력으로 하여 계속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진이나 화산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질현상들은 이 움직이는 판들에 의한 결과이다. 그런데 이 이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에 대륙이 이동한다는 매우 황당한 주장이 있었으며 그 주장의 주인공은 독일 출신의 알프레트 베게너(Alfred Wegener, 1880~1930)라는 과학자였다. 흥미로운 것은 베게너는 기상학자라는 것이었다. 그는 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기상학자로 변신했는데 편안히 앉아 대기의 상태를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었다. 기구를 타고 아찔한 높이까지 올라가 대기를 관측하는 고층기상관측 분야의 선구자였으며 52시간 기구 체공시간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베게너는 1910년 자신의 전공과 관련이 없는 주장을 하게 된다. 현재의 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선과 남아메리카의 동쪽 해안선이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보고 과거에 두 대륙은 붙어있었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갈라져 이동하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당시 주류 지질학계에서 볼 때 황당한 주장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대륙이동에 대한 근거는 두 대륙의 해안선 일치 이외에도 더 있었다. 양 대륙에서 퇴적된 암석이 유사하며 이 암석에서 발견되는 생물의 화석 또한 유사하다는 점이다. 수 천 킬로미터나 되는 두 대륙 사이에서 이 정도의 일치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에 베게너의 주장은 매우 근거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두 대륙을 포함하여 인도 남부, 호주에 빙하의 흔적이 있다는 것도 제시했다. 나아가 베게너는 1915년 저서 『대륙과 해양의 기원』을 통해 약 2억 년 전에 모든 대륙이 하나의 초대륙 ‘판게아(Pangaea)’을 이루고 있었고 이후 갈라져 지금에 이르렀다는 ‘대륙이동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이 책이 출간되고 영문판으로 번역되기도 했지만 학계의 반응은 엄청난 반대였다. 반대의 중요한 원인으로는 베게너가 대륙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베게너 자신이 지구의 자전에 의한 결과로 설명하려 했으나 그가 예측한 이동 속도를 뒷받침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반대에 대한 더 중요한 이유는 그가 주류에 속한 전문 지질학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만일 비전문가인 베게너의 주장이 옳다면 지질학 자체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가 그린란드 탐험에서 조난으로 삶을 마칠 때까지 비난과 조롱으로 일관하다시피 했다. 그의 시신은 이후에 발견되었는데 그의 동료들은 그 자리에 얼음 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판구조론의 기초를 제시한 위대한 지질학자가 아닌 모험적인 기상학자로서 삶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이후 20년이 더 지나면서 맨틀이 대류에 의한 운동을 한다는 관측과 함께 대륙이동설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결국 대륙 지각이 맨틀 위에 떠서 이동한다는 판구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판구조론은 이제 지질학의 대혁명이며 변화를 두려워하던 당시 학자들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우리는 베게너의 삶을 통해 여러 문제의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비난 속에 떠난 베게너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점에서 과학의 정직함과 엄밀함을 찬양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류 제도권이라는 틀 속에 갇혀 그 밖의 소리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비난과 조롱을 일삼는 풍토는 한 사람의 희생자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어떤 영광도 죽은 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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