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언제나 수(number)와 함께 한다. 시계를 볼 때, 돈을 지불할 때, 영화관에서 예매된 좌석을 찾을 때, 어느 경우든 수와 관계된다. 그래서 수학은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학문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실생활의 계산만을 위해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또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수학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지난 칼럼에 이어 오늘 소개할 두 번째 수학의 필요성은 증명이 갖는 힘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라는 사실은 매우 친숙한 명제이다. 그럼 이 명제를 증명할 수 있을까? 언뜻 보면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삼각형을 매우 정확하게 그린 후 각도기를 가지고 정밀하게 측정하면 되는 것이라고. 그런데 사용된 자와 각도기의 정밀도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근사적으로 180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확히 180도라고 확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수학적 명제의 증명이 어떤 도구의 정확성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증명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 증명은 실제 세계가 아닌 추상 세계에서 직관적으로 자명한 명제들과 그들에 의해 증명된 사실들을 이용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림처럼 삼각형 ABC가 있을 때 세 개의 내각을 각각 ㄱ, ㄴ, ㄷ 이라고 하자. 이들의 합이 정확히 180도임을 보이면 된다. 이제 점 A를 지나고 BC에 평행한 선을 그으면 그림처럼 A점 주위로 두 개의 각이 더 생기는데 엇각이라는 성질에 의해 왼쪽 각은 ㄴ 과 같고 오른쪽 각은 ㄷ 과 같아진다. 따라서 ㄱ + ㄴ + ㄷ = 180도가 된다. 결국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임이 증명된 것이다. 이처럼 증명의 세계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어떤 실용적 도구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각도기와 같은 도구는 이 추상적 증명이 현실 세계와 근사적으로 일치함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수학이 실용적이라 느끼는 이유는 수학의 논리성과 추상성이 현실 세계에서 너무나 잘 구현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 우주가 인간에 의해 이처럼 잘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다”라 했다. 물론 이 말은 수학적인 이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우주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바로 수학이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최고의 역작인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핵심적 상상을 이미 구체화한 상태에서 수학화 하는데 긴 세월을 보냈다. 과학은 기발한 상상력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의 최종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밖으로 나가 관찰하거나 측정하지 않고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수식과 씨름을 한 이유는 그의 상상과 경험을 추상 세계 안에서 논리적으로 완전한 하나의 수학적 방정식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있음으로써 현실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실제 현상들을 이해할 뿐 아니라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들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사실처럼 되어버린 우주의 팽창과 빅 뱅, 블랙홀은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먼저 예측한 것이며 이후 천문 관측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처럼 수학의 세계 안에는 많은 현실 우주가 들어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현실 우주를 발견하는 것은 인간 정신이다. 수많은 관찰과 경험이 중요하지만 결국 완성되어야 할 지점은 우리의 정신 안에 있는 합리적 세계다. 물론 수학의 세계에서 우주를 찾는 일이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수학 공식이라는 형태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자연현상보다 우리가 일상으로 겪는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이 복잡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두의 경험들을 일반화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고 체계가 필요하며 우리 모두의 몫이다. 과학보다 더 어려운 삶의 현실을 잘 준비하기 위해 골치 아픈 수학을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수학이 좀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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