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은 따뜻했다. 지리산 상봉에서 내려온 찬바람에 엄천강이 짱짱 얼어붙어도 거실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종일 들어왔고, 해가 넘어가면 집사는 추위에 취약한 나를 위해 벽난로에 장작을 부지런히 넣었다. 그래도 추울까봐 집사의 아내는 매일 저녁 나를 포근한 치마폭에 감싸고 책을 읽고 TV를 보고 바느질을 했다. 가끔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을 탐독하는 걸 볼 수 있었는데 훌륭한 집사가 되기 위한 교본이 아니었나 짐작한다. 집사의 아내는 요리솜씨도 뛰어나서 아침저녁으로 먹는 식단 외 다양한 캔 요리, 봉지요리를 만들었다. 내가 입이 궁금할 때 냐오옹~ 하면 집사의 아내는 즉시 캔을 따고 봉지를 부스럭거려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 요리나 명태요리를 만들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겨울은 차라리 따뜻했다고 냐옹한 어느 시인의 시를 나만큼 깊이 야옹하는 문학 냥이는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사월 벚꽃이 피고 질 무렵 나는 정원사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아침 해가 밝으면 꽃밭에 웃거름을 주고 정원에 조경수를 관리한 뒤 해거름에야 집안에 들어와서 고단한 몸을 누일 수 있었다. 그런데 모과꽃비가 내리던 어느 날부터 나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 잠자리를 데크에 있는 원룸으로 옮기게 되었다. 한동안 직장과 집안을 오가며 생활했는데 어떤 이유로 내가 밤낮을 직장에서만 보내게 된 건지 모르겠다. 어느 날 내가 돌담아래서 통통한 쥐를 한 마리 잡았는데 집사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고 집사의 아내는 기겁을 하고 뒤로 넘어갔다. 나의 첫 사냥이었다. 토드넘 새 축구장에서 열린 첫 경기에 손흥민이 넣은 첫 골 못지않게 나에게는 뜻 깊은 성취였기에 나는 나의 첫 수확물을 입에 물고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했다. 마침 휴일이라 집사부부가 텃밭을 정리하느라 마당 한 켠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마당을 가로질러 당당하게 행진하는 나를 보고 집사는 환호를 했고 집사의 아내는 놀라 넘어갔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더니 유감스럽게도 나의 첫 수확물에 욕심을 내었다. “뺏어! 뺏어! 먹기 전에~얼른~” 집사는 아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다닥 나의 수확물을 뺏으려고 달려들었다. 정말 실망스러웠다. 이럴 수가... 축하는 못해줄 망정 탐을 내다니... 집사 부부가 쥐고기를 좋아할 줄이야... 나는 몸을 돌려 후다닥 튀었지만 동작 빠른 집사가 팔을 뻗어 내 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내놔~” “냐옹~” “내놔~” “야옹~” “내놔~” “아옹~” “내놔~” “아오~” 집사 부부는 한 마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쥐를 요구하는 걸까? 그래서 내가 밤낮으로 사냥하도록 나의 잠자리를 데크앞 원룸으로 옮긴 것일까? 나와 단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고 말이다. 얼마 전부터 집사의 아내가 다시 학교 선생으로 나간다더니 먹고 살기가 어려워진 걸까? 만일 그렇다면 나도 쥐를 열심히 잡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가족이니까. 근데 이건 할 말은 아니지만 뒷마당에 사랑이와 오디는 여태 쥐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데 도대체 왜 키우는 걸까? 아무리 애완견이라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내가 원룸으로 이사하고 난 뒤 정작 정신적 타격을 받은 쪽은 집사의 아내였다. 두 아들이 취업을 해서 서울로 가버린 뒤 허전한 가슴에 나를 보담고 부비부비 위안을 얻었었는데 나까지 취업을 해서 독립하게 되니 나의 갸르릉테라피가 더없이 그리운 것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