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어버이날이 되면 교회에서 단골로 설교하는 성경 본문이 있다. 구약 성경에 있는 룻기서가 바로 그것이다. 룻이라고 하는 여인은 효부(孝婦)의 상징이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룻기 1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시대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이 사람들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 고향 베들레헴 땅에 흉년이 드는 바람에 자기 고향과 고국을 버리고 모압이라는 낯선 곳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런데 이들은 그곳에서 더 큰 낭패를 보고 말았다.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이 죽고 만 것이었다. 남의 나라 땅에서 남편을 먼저 보내고 아들 둘을 데리고 살던 나오미라는 여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나오미는 꿋꿋하게 자식들을 잘 키워서 아들 둘을 다 장가보냈다. 그래서 맞은 며느리가 ‘오르바’와 ‘룻’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고향을 떠나 온지 10년쯤 되었을 때, ‘말론’과 ‘기룐’ 두 아들도 모두 죽고 말았다. 졸지에 한 집에 세 과부만 남게 된 것이다. 나오미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이었을까? 그런데 그 즈음에 나오미의 고향인 유대 땅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문이 들렸다. 마침내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되었고, 두 며느리를 불러서 각자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결국 큰 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말대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 룻은 죽을 때까지 시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다며 시어머니의 고국인 이스라엘까지 따라갔다. 시어머니를 따라서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시어머니의 중매로 시댁의 친척 집안 어른인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나서 새 살림을 꾸리게 되었다. 그리고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오벳이 태어났고, 오벳이 이새를 낳았고, 이새가 그 유명한 다윗 왕을 낳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가문의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게 되었다. 착한 며느리 룻이 다윗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조상이 된 것이다.
세상 천지에 효도 안 하고 싶은 자식이 어디 있을까? 또한 부모치고 자식이나 며느리에게 잘 해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살다보면 그게 그리 쉽지 않더란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좋은 방법과 자식들에게 공경 받을 수 있는 특단(?)의 비결을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한다. 우선 부모님께 효도하는 방법은 그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예! 예!’라고 대답해 드리는 것이다. 부모님들의 말씀이 젊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현실에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해 드리라는 말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역시 그때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았구나!’라고 깨닫게 될 날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혹시 어르신들의 말씀이 불합리하게 들려도 일단은 ‘예, 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해 드리고 나면 자식들의 마음도 편안해지고 어르신들의 마음도 기뻐지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그런 면에서는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현실적으로 자식들의 고집을 꺾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일단 ‘오냐, 알았다. 너희 생각대로 해 보렴.’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좋다. 자식들도 다 생각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기들이 고집 부렸던 것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게 될 때가 온다. 자식들은 어머니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다시 한 번 더 생각을 해 보게 될 것이고, 결국은 부모님의 뜻에 따르게 될 거라는 말씀이다.또 하나의 팁을 드린다면 명령조의 말 보다는 권유형의 말로 대화를 하라는 것이다. 부모든 자식이든 ‘해라! 마라!’ 그러는 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라도 명령조로 얘기하면 다들 싫어한다. 그러니 절대로 ‘해라! 마라!’ 그런 말을 써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밥상을 차려 놓고 나서 자녀들에게 “야, 밥 먹어!”라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한술 더 떠서 “밥 안 먹을 거야? 상 치워 버린다!” 이런 협박성 발언은 매우 위험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극한 대립으로 몰고 가겠다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식사하세요!”라는 말도 존댓말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명령어다. 그럼 무슨 말이 좋을까? “식사 준비 다 되었다.”라든지, 아니면 적어도 권유형으로 “밥 먹자!”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이렇게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인정해 주고, 자식들은 부모님들을 존중해 드리는 것이 좋은 부모 좋은 자식이 되는 비결이다.
시어머니 나오미의 입장에서는 남편 잃고, 자식 둘을 다 잃어 버렸으니 며느리들이라도 자기와 함께 해 주면 얼마나 고맙고 좋았겠는가? 그러나 나오미는 ‘너희들은 너희 친정으로 돌아가거라!’라고 말했다. 내가 힘들면 며느리도 힘든 거다. 또한 며느리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큰 며느리 오르바는 어머니 말씀대로 친정으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작은 며느리 룻은 절대로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내 욕심만 차리고 내 생각만 했다면 자기도 그냥 친정으로 떠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며느리 룻은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드렸던 것이다. 어머니의 지위와 어머니의 권위를 그대로 인정해 드렸던 것이다. 착한 며느리 룻의 이야기를 그냥 미담으로만 듣고 흘려버릴 일이 아니다. 아름답고 복된 가정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꼭 마음에 새겨두어야 한다. 아무쪼록 우리 지리산 자락에서도 룻처럼 착한 며느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옛날처럼 ‘열녀’나 ‘효부’ 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이해하는 마음만 가지고 산다면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지라도 슬픔이 변해서 기쁨이 되리라고 필자는 믿는다. 절망이 물러가고 희망이 찾아오리라 확신한다. 주간함양 애독자들의 가정마다 자녀들이 행복하고 부모님들이 공경 받는 복된 가정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