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함양으로의 귀향(歸鄕)“일반 분들은 태어난 곳이 고향입니다. 제가 함양에서 태어났으니 함양이 고향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글을 쓴 자리가 사실은 고향입니다. 작품이 탄생한 자리가 고향이고, 도인들은 깨달은 자리가 고향으로 저는 그 3가지 고향을 다 함양으로 삼고 싶습니다.”
귀향(歸鄕). 이외수 작가가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60년 이상이 걸렸다. 초등학교 3학년 고향을 떠난 이후 62년 만이다. 주간함양 창간 15주년을 맞아 이외수 작가의 귀향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그가 기거하는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을 찾았다. 그를 만나기 위한 길은 그의 62년 만의 귀향만큼이나 아주 먼 여정이었다. 아무리 교통이 좋아졌다지만 5시간 가까이 걸린 먼 길. 그가 왜 자주 고향을 찾지 못했는지를 알 것도 같았다.
수년 전부터 이외수 작가의 귀향이 함양지역 이슈로 떠올랐었다. 본격적으로 그의 귀향이 논의됐지만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쉽게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안의면 밤숲에 그가 머물 집필실 등의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오며 그의 귀향이 확실시 되고 있다.
최근 오랜만의 장편소설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를 출간한 이후로 한결 편해진 얼굴로 일행을 맞았다. 화천읍에서 만나 그가 즐겨 찾는 식당에서 그의 이름을 딴 ‘외도리탕’을 먹기도 했다. “현재 상태로는 함양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집필실로, 가서 작품을 하나 쓰고 그 과정에서 군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향에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모색하겠다.” 그는 춘천과 화천에 집필실을 두고 있다. 집필실의 이름은 ‘格外仙堂(격외선당)’으로 격식 바깥의 신선의 집이란 뜻이다. 그의 호 격외옹(格外翁)을 딴 것으로 함양의 집필실도 격외선당으로 했으면 했다.
이외수 작가의 귀향은 지역사회에도 큰 화제다. “함양에서도 저보다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배출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일체의 모임이나 행사에는 가담하지 않았다. 저를 보고 논단의 이단아라고들 한다. 제가 필요로 한 곳은 어디든 가겠다.”
고향에서의 작품활동 의지도 보였다. “글이란 것이 인간을 알게 만들고, 느끼게 만들고, 깨닫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낫고, 느끼는 것 보다 깨닫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제 고향 함양은 역시 도인들이 많은 고장이고, 특히 최치원 선생님도 활동하셨다. 함양에 가면 정신적 수양, 영적 수양을 더 곁들여 큰 깨달음으로 가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탄생시키고 싶은 욕심이다. 작품에 따라 다를 것이다. 오행 소설 중에서 나무에 관한 소설은 이제 연재가 다 끝났다. 이제 흙에 관해서, 수에 관해서, 불에 관해서, 금에 관해서 남았는데, 최소한 반 이상은 함양에서 쓸 것 같고, 난이도가 높은 작품일수록 고향의 기운을 좀 받아서 쓰고 싶은 욕심이다.”
창간 15주년을 맞은 주간함양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지역 언론일수록 지역을 사랑한다.’라는 명제를 걸고 있다. 지역 주민의 눈 귀 입을 대신하는 정의 구현, 신속 정확한 소식 전달이 목적이다. 지금까지 언론은 중앙 중심 언론일수록 정치적 눈치를 많이 보고, 심지어 ‘기래기’라는 오명까지 쓰게 됐다. 적어도 지역 언론만큼은 그 청정성을 잃지 않고, 특히 정의로움, 주민들의 눈, 귀, 입을 대신하는 참다운 언론으로 성장하길 기원한다.”함양과 최치원 그리고 신풍류도오늘날 대한민국은 주변국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경제적 군사적으로 막강한 나라들 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쓰러지지 않고 세계무대에서 버텨 왔다.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OECD국가에서 경제력 10위에 올라섰으면 대단한 것이다. 이 잠재력, 이 경쟁력을 지탱해 온 것은 양반정신이나 선비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건국이념에 해당하는 홍익인간 정신이 깃들어있다. 홍익인간정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정신은 나를 중심으로 삼는 정신은 아닌 것 같다. 남, 여럿을 생각하는 정신이다. 언어를 보면 우리말에는 ‘나’라는 말보다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쓴다. 집도 우리 집, 차도 우리 차, 동네도 우리 동네, 심지어 마누라도 우리 마누라라고 한다. 우리라고 하는 의미는 상당히 따뜻하고, 나 이외에 타인을 의식하는 정신이라고 본다. 이 정신은 장인정신과 맞닿아 있다. 장인은 자기가 쓰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온갖 정성을 다 바친 것을 남이 쓰는 것이다. 장인들이 아주 고도의 집중력과 온갖 정성을 다 들인 사랑을 담는 것은 나 이외의 남을 위한 것이다.
우리의 홍익인간 정신이야 말로 장인정신이다. 적어도 기능올림픽에서 18연패 이상 한 것으로 안다. 이때까지 밖에 세다가 말았는데. 그것 때문에 기술력, 경쟁력, 잠재력 이것들을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았다. 손으로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기계가 못 쫓아 올 정도의 정밀도를 가지고 있다. 쉬운 일례로 세계 일류를 달리고 있는 손톱깎이를 보면 거의 비행기 부품이나 자동차 부품의 정밀도를 능가한다. 그래서 기술이 유출될까봐 외국 기술자를 안 쓴다고 한다. 세계 1위를 달릴 수 있는 그런 정확도는 곧 대한민국 국민들의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제가 알기로 사실 과학기술 분야에도 관심과 투자만 있다면 훨씬 세계를 압도할 만한 그런 잠재력을 가진 젊은 과학도들도 많이 존재한다. 예술 분야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잘 알려지지 않았고 매스컴에서 등한시할 뿐이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젊은 예술가들이 상당히 많다. 기이하게도 백남준 선생님 같은 경우 최첨단 예술의 창시자로서 분명히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일본으로 되어 있다. 예술을 등한시 했기에 나온 결과다. 훌륭한 예술가들을 앞으로 세계를 이끌어갈 예술가들이 많이 있다. 앞으로 함양에 간다면 그러한 젊은 잠재력 있는 예술인들, 시서예학(試書藝學)을 두루 갖춘, 동서고금을 총 망라하고 아우를 수 있는 이러한 정신의 메카가 함양으로, 함양을 그야말로 젊은 예술인들의 정신의 메카, 예술의 메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고장으로 부각시키고 싶다.
특히 우리의 고유 정신, 일류를 구원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은 최치원 선생님이 가지셨던 풍류도라 생각한다. 다른 외국의 수행과정을 보면 시서예학이 잡기라 생각하고 그것이 수양이나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등한시했다. 우리 도만 유독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건너가는 징검다리 역할로 활용했다. 그 가장 좋은 예가 화랑도가 속한다. 화랑도는 풍류도의 모체이고. 그래서 함양하면 최치원 선생을 빼놓을 수 없고, 그래서 함양이 풍류도의 본고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향에 가면 ‘신풍류 운동’을 펼쳐보고 싶다. 그래서 정말 신바람 나는 고향이 되게 하고, 신바람 나는 대한민국으로 확산시키는 이러한 구상을 하고 싶다.
함양(咸陽)은 ‘다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주 최고의 양기, 태양의 기운이 고향땅에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충만하길 바라며, 그것이 곧 대한민국을 더 밝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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