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로서 자식들을 위해 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일찍이 남편과 사별한 후 집안의 생계는 물론 두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어머니. 어느새 세월이 흘러 곱던 얼굴은 주름이 가득하지만, 사회적 성공과 일가를 이룬 두 아들이 있어 언제나 당당하다. 제45회 어버이날을 맞아 장한어버이 부문에 선정된 안의면 강점옥(68) 여사. “내가 살기 위해 그렇게 했다. 어느 부모가 그러지 않겠나” 부모로서 어머니로서 당연한 듯 이야기하지만 아낌없이 내어준 그녀의 삶은 모두의 귀감으로 다가온다.
결혼 생활 15년차에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중학교 1학년과 초등 5학년 두 아들을 책임져야 했다. 가진 것이 적었던 그녀는 두 아들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그때부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어머니의 위대한 여정이 시작된다. 학비와 생계비를 위해 논도 팔고 집도 팔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 주변에서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런 말이 속상해 더욱 악착같이 살았던 것 같아요” 정말 악착같은 모정이었다. 진주지역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이사를 택했다. 그리고 서울대에 입학한 아들을 위해 서울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 “농사 조금 지어봐야 나오는 돈이 적어요. 매달 돈이 나올 수 있어야 학비를 낼 수 있었어요. 옷 만드는 공장도 다니고 아기 돌보미도 하고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렇게 어머니의 아들 사랑은 진주에서의 5년, 서울에서의 3년, 모두 8년이라는 자녀들에 올인하는 삶이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형편이 어려워 영세민 수급을 받았었는데, 이게 학교로 바로 통보가 갔나봐요. 선생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아들이 너무 낙심하는 것을 보고 다음해에는 신청하지 않았죠. 아들 기 죽이면 안 되잖아요” 자신은 부족해도 언제나 아들들만은 당당하길 원하던 어머니.
어머니가 그렇게 자랑하는 두 아들 한지훈·지용 형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맏이 지훈씨, 그리고 서울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현재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둘째 지용씨. 수상이 확정된 후 ‘잘 커줘서 고맙다. 덕분에 상 받게 됐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니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라는 답장을 받았다며 기뻐하시는 어머니. 아직도 그녀는 아들이 받아온 상장과 일기장을 보물 1호로 간직하고 있다. “일기장에 ‘엄마는 끄세요. 저희는 밀께요’라고 적혀 있었어요. 너무 착한 아이들이지 않은가” 장성한 두 아들의 사회적 성공도 고맙지만 그녀에게는 착하고 바르게 커 준 것이 가장 큰 보람으로 다가온다. 그 동안은 자식들을 위해 희생한 그녀가 이제 1000여 마리의 닭들과 함께 또 다른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일을 찾기 위해 함양군자활센터에 참여해 친환경 유정란을 생산하는 ‘당내미골 사람들’을 창업했다.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열심히 살았지만 이런 길을 열어준 곳이 자활이기 때문이죠.”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빌렸던 돈도 이곳에서 일하며 모두 갚았다. “마지막 빚을 갚는 날 너무나 기뻤어요. 아들들에게는 빚을 물려줄 수는 없잖아요.” 7년 전부터 시작한 당내미골 사람들은 이제 닭 1000마리가 넘는 농장으로 변했다. “말년에 나에게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해요. 편하면 뭐해요 일거리 있는게 너무 행복해요.”
그녀는 이제껏 제대로 된 자신의 것 하나 살줄도 몰랐다. 장성한 아들이 이제는 엄마를 위해 쓰시라고 말하지만 돈 쓸 줄을 모른다. 언제나 가장 우선이 자식들의 것이었다. 그녀에게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자랑스럽게 커 준 것이다. “부모의 삶 자체가 교육인 것 같아요. 아이들도 부모를 보고 그대로 심성이 만들어져요. 힘들어도 꿋꿋하게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는 것 아니겠어요.” 아직도 그녀의 바람은 한가지다. “항상 아프지 말고, 바르게 살아간다면 좋은 세상이 온다”라고. 자녀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장성해 일가를 이뤘지만 부모에게 자녀는 항상 돌봄의 존재이며 자랑거리다.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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