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함양시장으로 이름을 바꾼 중앙상설시장. 오랜 역사만큼이나 시장을 삶의 터를 삼고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서 50년 넘게 지리산함양시장을 지켜온 조용언(77) 중앙철물점 대표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철물점을 시작해 현재까지도 꿋꿋하게 시장을 시켜오고 있다. “장사를 시작한지 50년이 넘었어.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언제 시작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어.” 50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철물점만큼이나 조용언 대표의 얼굴에도 주름이 가득했다.
이곳 중앙철물점에서 주로 취급하는 물품은 농기구다. 호미, 괭이, 삽, 낫 등 다양한 농기구들이 제 주인을 기다린다. “예전에는 많이 팔렸지만 요즘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예전만큼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안타깝게 하소연 하는 조 대표. 한창때는 이곳에서 탈곡기도 팔고 쟁기와 써래 등 덩치가 큰 농기구들도 취급했었다. “대구에서 삼륜차에 농기구를 싣고 가져왔었지. 삼륜차에 실어 봐야 얼마나 실을 수 있겠어. 그렇게 해서 팔았었지” 아련한 옛 추억처럼 할아버지의 가게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처럼 층층이 먼지도 쌓여있다.
간만에 온 손님, 합천에서 놀러와 봄나물을 뜯으려고 칼을 산다며 작은 칼을 잡고 가격을 깎아 달라 조른다. “제 값을 주고 사야 제 몫을 하는 거여. 필요한 물건은 깎으려 하면 못 써”라며 혼내신다. 그러면서도 슬그머니 조금은 깎아 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조 대표. 조금의 에누리는 주는 것이 재래시장의 참맛이다. 곧바로 칼을 팔지 않고 몇 곳에 손을 댄다. “잘못 다루면 다칠 수가 있어. 이렇게 손잡이 쪽 칼날을 조금 깎아 줘야만 다치지 않고 쓸 수가 있지. 이렇게 손질해주는 곳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라며 큰 소리를 치신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이웃한 전북 산내다. 이곳에 터를 잡고 50년간 철물점을 운영했다. “단골도 참 많았는데 내 또래는 대부분 죽었어. 이제 농사도 짓지 않고...” 예전 한창 함양시장이 잘 될 때는 이곳에도 철물점이 4곳이나 있었단다. 5일장이 서지 않는 평일의 함양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많이 줄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있어야 견물생심 보고 물건을 사지. 농부가 농사를 지어야 물건이 팔린 건데 영... 내 집이고 갈데도 없으니 문을 열어놓고 있는 거지”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문 쪽을 바라보는 조용언 대표.
50년 철물점을 운영한 조용언 대표는 지리산함양시장의 산 증인이다. 세상의 변화와 맞물려 지리산함양시장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초가집 시장에서 지금의 모습까지 그의 추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그때가 재미있었지. 술 먹고 비틀비틀하고, 싸움도 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났었어” 요즘은 명절 대목에도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평가다. “예전 명절 대목에는 사람들이 많아 밀려다녔어. 생각해봐. 이 좁은 시장 바닥에 가득 사람들이 몰려와 대목장을 보는 모습이 얼마나 좋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어떤 이가 ‘칼 갈아 주죠’라며 식칼 등 4개를 건넨다. “할일이 없으니 이거라도 해서 담뱃값이라도 벌어야지 않겠어” 그렇게 받아든 칼을 그라인더로 갈고 다시 한 번 숫돌로 날을 세운다. “못 가는 칼은 없어. 만드는 사람도 있는데 왜 못 갈겠어” 두 번의 작업이 끝나자 뭉툭했던 칼날이 바짝 날이 섰다. “다른 사람이 보면 칼 갈아 먹고 산다고 흉 볼 수도 있어. 처음에는 칼을 안 갈았는데, 하도 갈아달라고 부탁해서 시작했지. 칼만 갈아서는 먹고 살수가 없어” 두 번의 작업을 거친 칼이 제대로 날이 섰는지 종이를 잘라보며 실험해보기도 한다. 칼 가는 가격이 얼마냐는 물음에 “그냥 대충 2자루 갈면 담배 한 갑 가격이면 돼”라며 넌지시 가격을 알려준다.
“그만 두려고 해도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 누가 와서 이런 일을 하겠어. 마음은 안 그런데 이제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아. 올해만 하고 그만해야지. 매년 그렇게 또 하고. 오늘이라도 누가 한다면 다 줄 건데. 고물장사한테 주기는 너무 아깝잖아”
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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