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공구상자를 들고 감나무 전정 작업하러 집을 나서는데 웃음이 막 나왔다.(이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야~ 앗싸~) 매년 이맘 때 이삼일 감나무 전정하느라 높은 사다리에 올라서서 톱질을 하고 나면 손가락 마디마디 물집이 잡히고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올해는 충전식 전동가위를 빌려 손쉽게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관운장이 적토마를 달리며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듯 감나무 가지를 싹둑싹둑 잘라낼 생각을 하니 입이 자꾸 벌어졌다. 일은 장비가 하는 거지 사람이 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반나절만 수고하면 깔끔하게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여유까지 부렸다.(앞마당에 절정인 산수유 한 컷 찍고, 화단 한 구석에서 떼창하는 크로커스도 찰칵찰칵 찍었다.)
충전식 전동가위는 동력으로 가지를 자르는 것이니 내가 힘쓸 일은 없다. ‘열려라 참깨~’ 아니 ‘잘려라 가지~’ 하고 주문을 외면 가위가 나뭇가지를 싹둑 잘라주는 것이다. 이건 프랑스에서 수입된 고가의 장비로 하루 사용료 2만원 내고 농기계 임대사업소에서 빌려왔다. 오후 5시까지만 반납하면 되는데 얼추 반나절만 작업하면 될 것 같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즐거운 마음에 휘파람을 불며 과수원으로 가는데 사랑이가 따라 붙었다. 나는 그냥 기분이 좋아 휘파람을 분건데 사랑이가 자기를 불렀다고 우기고는 망아지처럼 펄쩍거리며 앞장섰다.
충전식 전동가위는 다 좋은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방탄조끼 같은 옷을 입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끼형태의 이 옷에는 무게가 제법 나가는 충전 밧데리 여러 개가 들어있고 전선이 전지가위와 안전장갑에 연결되어 있는데, 조끼를 걸칠 때 테러리스트가 입는 폭탄 조끼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살짝 긴장된 기분으로 자폭 조끼를 입고 시스템 전원을 켠 뒤 사다리에 올라서서 첫 번째 가지를 막 자르려고 하는데 스맛폰이 울렸다.
사다리 꼭대기에서 불안하게 전화를 받으니 집에 사람이 와 있는데 블루베리 나무를 사러 왔다고 한다. 수년 전에 제2과수원을 조성하고 감나무와 블루베리를 같이 심었는데, 블루베리는 잡초관리가 힘들어 나무를 뽑아 저렴하게 팔고 있다. 나는 테러리스트 같은 복장으로 블루베리 나무 사러온 손님을 맞을 수는 없는지라 조끼를 벗어놓고 집에 갔더니 안의에서 아주머니 세분이 빨간 경차를 타고 와 있었다. 재미로 블루베리를 한 두 그루씩 심어보겠다며 모두 다섯 그루만 달라고 하는데 차는 작고 나무는 커서 더는 실을 수도 없었다. 뒷좌석에 다섯 그루를 겨우 구겨 넣고는 좌석이 부족해서 아주머니 한분은 나무 위에 얹혀갔다. 블루베리 밭이 집 가까이 있어 나무 다섯 그루는 금새 뽑았지만 블루베리 재배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느라 시간이 제법 걸렸고 차를 보내고 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버렸다. 감나무 전지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내가 지금 비싼 장비를 빌렸는데 얼른 사용하고 5시까지는 반납해야 해서 블루베리 재배에 관한 강의를 할 처지가 아니라고 했는데, 아주머니 세분의 입장은 또 달라서 나무를 사 가는데 그럴 수는 없다며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고 블루베리 박사가 되고난 뒤에야 돌아갔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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