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엔 그 어떤 것도 제한이 없는 것이 없다. 우리 모두 귀하게 여기는 생명 역시 제한이 있다. 개인별로 길거나 짧기는 하지만 살아가는 동안 행복하게 오래도록 살고 싶다. 그래서 우리 모두 열심히 산다. 운동도 한다. 맛있거나 건강한 웰빙 식품을 찾아 먹기도 한다. 누구나 건강하면 오래 살수 있다고 믿으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런데 나 잘 살자고 타인을 해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기, 강도 등 범죄가 그 경우다. 우린 그런 사람들을 파렴치한 사람이라고 부르며 욕을 하며 세상에 필요치 않은 사람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한번 깊이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것들 중 사기나 강도 같은 일들을 벌이며 타인을 해치고 살아가기도 한다.
‘내가하면 사랑, 타인이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객관적 입장엔 서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린 ‘내가하면 사랑, 타인이하면 모른 채’ 하는 것을 객관적 입장에서 바른 판단을 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객관적 판단이 아닌 방관일 뿐이며, 더 깊이는 자신의 유익만 구하고 사회는 생각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결국 ‘방관’역시 편견인 판단을 가지고 사는 것의 다른 표현일 뿐인 것이다.
정리하면 욕심의 크기가 커지면 사기나 강도가 되고 조금 작으면 방관에 자신만 생각하는 극단적 개인주의자인 것이다. 왜 우리는 제한된 인생을 살아가며 타인을 인정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는 종종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의 영화나 감동 스토리로 만나 보았을 것이다. 그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있는 시간을 즐기고 적극적으로 살며,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감동을 받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라.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길어야 백년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왜 영화 속의 시한부 사람처럼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인생은 남보다 더 길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소유를 비교하는 욕심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이 가진 귀한 것이 있다. 남이 가진 것을 내가 소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진 것을 귀하게 여기고 사용 할 줄 아는 것이 행복일 것이다. 각자의 재능과 능력으로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하기보다 타인을 위하여 사용되어질 때 더 귀하게 여겨질 것이며 자신의 존재감이 더 확실해질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천하 모든 것보다 귀하게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다고 해도 절대로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타인의 것을 칭찬하고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며, 그 누구도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누가 먼저 사랑할 것인가? 그 해답은 바로 나부터 이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서로 사랑할 땐 무한한 에너지가 생겨나서 세상에서 안되는 일이나 못할 일이 없다. 우리 서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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